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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술칼럼]펄벅의 대지를 읽고

[2011-02-14, 07:27:25] 상하이저널
중학교시절 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네 서점을 갔었는데 만화책코너를 서성거리고 있던 나에게 어버지는 ‘펄벅의 대지’라는 책을 손에 쥐어 주었다. 집에 돌아와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였고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머릿말에 쓰여진 저자의 말을 자꾸 들춰 보았다.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은 중국이고 중국인인데 저자는 미국 아주머니고 해서 어리둥절해서 그랬던 것 같다. 당시 방학숙제 독후감으로 대지를 쓴 기억은 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왕룽이라는 사람이 땅에 욕심이 많았고 아내에게 못된 행동을 해서 벌 받았다는 권선징악의 구도로 쓴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20년이 지나 펄벅의 대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왕룽일가

1892년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중국 선교사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생후 석달 만에 중국으로 건너가 양쯔강 연안의 전장이라는 소도시에서 성장한 소녀가 있었다.
‘어린시절 내가 중국인인 줄 알았다’고 얘기할 정도로 그녀는 중국말을 먼저 배우고 중국 전래 이야기를 들으며 중국 옷을 입고 중국인 학교에 다니며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방식 아래서 자랐다.

세월이 지나 여인이 된 그녀는 18세에 미국으로 돌아가 버지니아의 랜돌프 메콘 여자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결혼해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였다. 이 시절 정신지체아인 큰 딸을 보며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그중 1930년에 쓴 소설이 ‘대지’라는 작품이다. 이후 이 작품을 통해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펄벅(Pearl S. Buck)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이제 그녀가 쓴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자.

펄벅의 대지에서 주인공은 ‘왕룽’'이란 사람이다. 안후이 사람으로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별볼일 없는 가난한 농부 왕룽은 읍내의 부호인 황가집안의 노예였던 ‘오란’과 결혼한다. 오란은 못생기고 말수도 적었지만 스스로 자기일을 찾아 하는 성실함과 늙은 시아비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 얼굴의 컴플렉스를 이겨낸 여인이었다. 오란의 노력 덕분에 이들 부부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읍내밖 시골에서는 제법 풍요로운 집이 되었다. 하지만 왕룽은 그녀가 살림을 일으켜 세운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그녀를 못생겼다고 싫어한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가뭄과 메뚜기떼의 속출로 인해 이들 가족은 굶주림을 겪게 되고 이를 참다 못한 왕룽은 자신에게 피와 살 같은 땅을 버리고 강소성의 대도시로 이사를 떠난다.

이주 후 하루하루 막일과 구걸로 연명하던 중 도시에 폭동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 혼란 속에서 보물 주머니를 주운 왕룽부부는 그것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몰락한 황가의 토지와 저택을 사들인다. 땅과 일꾼이 늘어나면서 왕룽은 부자가 되어간다. 왕룽은 땅이 늘어나자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배에 기름이 끼기 시작하니 또 오란의 외모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읍내 찻집에서 일하던 롄화라는 여자를 첩으로 받아 들인다. 오란은 얼마 후 오랜 지병으로 인해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왕룽은 잠시 죄책감에 빠져들게 된다. 윗물이 이러하니 자식 농사도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학자, 상인, 군인으로 키웠으나 이들의 멘탈이 좋을리 없었다. 인생을 땅을 통해 자신을 채워 나갔던 왕룽이 지난 시절을 반성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자식들은 아버지가 목숨과 같이 여기는 땅을 팔려고 계획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지금 중국에서의 ‘왕룽은 누구이고 또 오란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왕룽과 같이 땅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누구일까? 골똘히 생각해보니 현재 중국의 땅 주인인 중국 정부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경제적 하드웨어인 땅을 얻기 위해 투쟁한 역사가 있고 지금은 이것을 지키고 관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왕룽과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일 예로 펄 벅의 ‘대지’에는 왕룽이 메뚜기떼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모습과 메뚜기떼의 공포스러운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남쪽 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려 있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온통 밤처럼 캄캄해지고 메뚜기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은 잎사귀는 볼 수 없고 모두 졸지에 황무지로 돌변했다. 아낙네들은 향을 사다가 지신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고 남정네들은 밭에 불을 지르고 고랑을 파며 장대를 휘두르며 메뚜기떼와 싸웠다.’

이렇게 왕룽을 긴장시킨 메뚜기떼는 핫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중국은 일본과 대만이 당한 메뚜기떼의 피해를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 하였기에 더욱 긴장 할 수 밖에 없다. 중국부동산시장에 차익을 얻고 빠지려는 핫머니들을 경계하고 막기 위하여 나오는 정책들을 보면 왕룽이 바지춤을 추스리고 작대기를 휘두르며 메뚜기와 싸우는 모습이 연상 되어진다. 그럼 오란은 누구일까? 물론 인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왕룽과 함께 묵묵히 땅을 일구어온 인민들이 진정한 오란일 것이다. 하지만 오란 사이에 빈부격차는 정부입장에서는 왕룽이 오란의 외모를 바라보듯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책 속의 오란은 원바오(温饱ㆍ먹고 살 만한 수준) 시대를 살아서 망정이지 샤오캉(小康: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물질적으로 안락한 사회)시대의 오란들은 얼굴이 못생겼으면 성형도 불사할 사람들로 바뀌어가고 있어 왕룽이 첩을 들인 것과 같이 부정과 부패를 일삼으며 시대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오란한테 큰 코 다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보다 문제는 책속 내용에서도 그렇듯이 자식들인 지방정부들이다. 중국 지방정부는 직접 은행 대출을 받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은 투자회사를 세워 토지 등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는 식으로 보증을 섰다. 개발사업을 시작할 때 갚을 계획조차 마련하지 않았고 중앙정부에 보고도 하지 않은 ‘숨겨놓은 부채’도 허다하다. 한마디로 아버지 몰래 땅 담보로 돈을 가져다 쓴 것인데 부채가 적어도 RMB10조(1조 5천억 달러)에 달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실 대출문제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결국 중국 은행들과 중앙정부의 부담이 되어 일이 불거지게 되면 중국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아버지가 애물단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직 잃어 보지는 못 했는데 펄벅은 ‘대지’ 이외에 세 아들의 생애를 그린 ‘아들들’ 손자의 이야기인 ‘분열된 일가’라는 독립된 작품을 썼는데 3대에 걸친 이야기가 연개성이 있어 대지의 후속편으로 보여진다. 현대의 고전으로 사랑받는 펄벅의 소설에서 중국 경제의 미래를 점처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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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4년간 부동산 회사를 다니던 중 한국에는 ‘자수성가란 말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홀홀단신으로 2002년 상하이에 입성했다. 이후 순차적으로 부동산중개, 분양대행, 컨설팅회사를 설립 지금은 부동산 개발/PM회사를 경영하며 틈틈이 기업체와 학교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중국부동산과 관련하여 한국 공중파 3사와 상하이 부동산방송의 인터뷰가 있으며 上海电视台의 시사프로인 ‘深度105’에 출연한바 있다. WeChat: hanguoshushu998
sulsul2002@yahoo.co.kr    [김형술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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