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우연히 읽었던 ‘아내가 결혼했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노골적인 제목처럼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한 이야기다. 소설이긴 하지만 외간남자도, 세컨드도, 애인도, 이중생활도 아닌 두 집 살림을 충실히 하는 아내의 이야기다. 그것도 두 남자의 동의하에 공개적으로 두 집 살림을 잘 해낸다. 소설을 읽는 동안 두 집 살림은 본래 여자의 몫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속소설에 등장하는 바람난 남자의 두 집 살림은 머리채를 잡는 두 여인의 이야기로 이어지지만 아내의 결혼은 결말직전까지도 가히 성공(?)에 가깝다.
그런데, 남편이 사랑에 빠졌다. 소설이 아닌 내 남편 얘기다. 남편을 통해 머리 나쁜 남자는 역시 두 집 살림이 맞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남편의 또 다른 사랑은 금새 들통이 났다. 해 하나도 품기 벅찬 내 남편, 해와 달을 한꺼번에 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늦바람은 쓰나미급이다. 시작된 지 2년째, 어지간한 부부싸움에서 패해 본적이 없는 내가 슬슬 백기를 준비하고 있다.
남편의 그 죽일 놈의 사랑은 바로 ‘배드민턴’이다. 잦은 말다툼으로 시작한 신경전은 결국 나도 모르게 아이유의 3단 고음까지 토해냈다. 항상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남편을 괴롭혀 왔던 내가 결혼 10주년을 앞두고 최고의 부부싸움으로 기록될 고성을 질렀다. 남들은 이해하기 힘든 시추에이션이겠지만 나에겐 시국선언 버금가는 위기였다.
“운동을 하겠다는데 남편 등을 떠밀어도 시원찮겠네.”
“하루 종일 치는 골프보다 낫잖아.”
“술도 여자도 아닌 배드민턴이면 훌륭한 취미지.”
이렇게 말하면 할 말 없겠지 할 것이다. 그런데 난 할말이 많다. 어린 아이들과 주말이면 맘껏 놀아줘야 하는 아빠가 마음은 늘 콩밭 코트장에 가 있다. 주말에 가족끼리 야외라도 나가자고 조르면, 실적위주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주말아침 늦잠도 못자게 가족들을 깨워가며 부지런 떤다. 오후 시작하는 배드민턴을 위해 오전 중에 서둘러 놀이 스케줄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아침밥상도 준비한다. 배드민턴을 위한 계략이란 걸 알기 때문에 전혀 감동이 없다. 인근 공원에 나갔다가도 배드민턴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신데렐라 남편이다. 아이들의 흥이 정점일 때 항상 찬물을 끼얹는 못된 아빠다.
가끔은 평일 저녁 출장에서 늦게 도착한 것처럼 속이고 배드민턴을 쳐댄다. 심지어 땀에 젖은 운동복을 트렁크에 꼬불쳐 넣고, 곱게 세모시 옥색치마로 갈아입고 봄처녀마냥 사뿐히 들어온다. 금박물린 댕기로 꽁꽁 묶어 창공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맘 굴뚝인 적이 한두번 아니다. 남편의 속임질에 의부증 증세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미저리로 변하는 나를 느낀 적도 있다.
죽일 놈의 배드민턴 사랑의 하이라이트다. 난 이 사건을 계기로 남편을 깨끗이 포기했다. 회사일로 야근해야 했던 난 남편의 성화에 못이겨 ‘파리채 날리고 싶거든 작은 애 재우고 가’라고 선심성 발언을 했다. 초저녁잠 없는 작은애를 믿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8시 무렵 집에 가보니 애는 자고 아빠는 콩밭으로 사라졌다. 큰애의 증언이 필요했다.
“어, 아빠가 동생 감기도 안걸렸는데, 콧물 나네~ 약먹어야 겠네~ 하면서 콧물약 한스푼 먹였어.”
처자식 버리고 밤마실 나간 바람난 남편의 독한 사랑을 온 몸으로 느꼈다. 거울 속에 비친 뭉크의 절규 같은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의 KO패를 받아들였다. 이젠 ‘힘 빠지면 집으로 기어들어 오겠지’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늦바람을 인정하고 있다.
어제 작은 애 유치원에서 영어이름을 지어오랜다. 알림장에 ‘마틴’이라고 적어 보냈다. 큰 딸 이름은 ‘카밀라’다. 배드민턴계의 사라포바 ‘카밀라 마틴’을 아예 우리 집안으로 끌어들일 참이다.
▷김진희(cadm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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