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의 방에 들어서면 왠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이 아이가 떠난 지 이제 겨우 2주여 일인데, 어제도 남은 짐을 부쳤었는데, 떠나간 빈자리가 덩그러니 커져가고 있다. 거둬들인 빨래를 정리 할 때면 절로 생각이 난다. 속옷이며, 스타킹이며, 양말이며… “엄마! 나보고 싶을 때 실컷 보세용!”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냉장고위에 붙여져 있는 사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젖히는 냉장고 문 위에서 새침떼기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작은 아이를 이웃 동생에게 맡기고 딸아이가 앞으로 1년 가량 살아야 할 산둥성 지난(济南)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챙긴다고 한 짐이 큰 트렁크 두 개, 작은 트렁크 하나, 거기에다 이불, 그리고 배낭과 컴퓨터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최근에 허리 디스크막이 찢어져 약물로 겨우 치료가 끝난 뒤라 함부로 무거운 짐 하나 들어줄 수 없는 나로서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그야말로 짐 지킴이 역할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로선 혹을 하나 더 달고 간 셈이었다.
산둥성의 중심지라는 도시, 지난 국제공항에선 한국말 안내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친숙한 안내방송을 듣고서 순간, ‘어? 살기에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는 택시 마크도 안 달린 여기서 흔히 말하는 헤이처(黑车)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공항하고 연계된 택시라 말하고 있었다. 시내로 들어서자 온 지역이 공사 현장 같았다. 사방이 한창 개발 중 이었다. 새로 짓고 있는 공사건물에 온 도시가 마치 먼지 안에 갇혀있는 듯 갑갑함과 건조함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하늘이 뿌연 것인지, 먼지가 대기를 가득 채워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를 찾았다. 딸아인 스타벅스도 있고, Bread Talk도 있다며, 좋아했다. 상하이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한 군데씩 눈에 띄였다. 한 개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다행스러워하는 딸아이가 ‘참, 소박도 하다. 그래, 짜증 난다고 투덜거리는 것보단 훨씬 낫지’ 싶었다. 물이라도 사서 들고 다니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편의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새로 지어진 대형 쇼핑몰에 들어서니 한국 간장, 된장, 고추장, 음료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삼다수 한 병을 손에 쥐고서 앞으로 아이가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나 눈여겨봤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상하이에 사는 게 천국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중국 중, 가장 살고 싶은 곳이 상하이라고 한다더니 실감이 났다. 지난에선 쉽게 지갑이 열리지 않을 것 같아 차라리 엄마가 필요한 거 있으면 상하이에서 사서 부쳐 주겠다고 했다.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는 내게 딸아인, 자신은 중국음식에 이미 익숙해져서 그렇게 많이 필요할거 같진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 년인데 뭘….
딸아이 방에선 아직도 그 아이의 체취가 느껴진다. 좋아하는 향수병들이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인가, 그 아이의 냄새인양 내 코끝에 머무른다. 이불을 다 걷어버린 딸아이의 침대가 처음엔 깔끔해 보이더니, 이젠 썰렁해 보이기 시작했다. 카톡으로 자주 얘기를 주고 받지만 물리적인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상하이보다 더 낙후된 곳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더 마음이 편치 않다. 같은 중국 내에 있어도 쉽게 가지 못할 거 같아서 더 안타깝기도 하다.
날씨가 지금보다 더 추워지면 내 마음도 같이 더욱 쓸쓸해질 것 같다. 딸아이와 내가 즐겨 찾던 호남 요리는 언제 같이 먹으러 갈수 있을런지…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을 잘도 주문해 줬었는데… “성질 부려서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따 당하지 말고 잘 지내셔용…”라고 말하는 아이, 한편으론 친구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애물단지 같은 딸아이가 이 가을에 쓸쓸함을 더해 주고 있다. 좋은 하루 되라고, 굿나잇이라고, 이모티콘을 마구 날려주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쓸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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