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서 전화를 했다. 자기가 축구를 하다가 머리가 땅에 부딪혔는데 아프단다. 처음엔 그래 조심해야지 하고 끊었는데 5분 간격으로 전화를 하는 거다. 곁에 있던 친구가 그제서야 정신없는 내 아이를 대신해 자초지종을 들려 주었다. 큰아이가 골키퍼를 하고 있었단다. 공중볼 쟁탈전이 있었는데 공만 보고 점프하던 두 아이의 머리가 서로 공중에서 부딪히고 큰아이가 떨어지며 바닥에 한 번 더 머리를 부딪혔단다. 큰아이는 계속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학교를 향해 가며 남편과 나는 별 생각을 다 했지만 둘 다 말없이 계속 아이를 위해 기도밖에 할 게 없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지옥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었고 급성으로 뇌진탕이 왔던 것이었다. 잔잔한 일상 중에 던져지는 폭탄 같은 위와 같은 순간을 접할 때 항상 몇 가지 생각이 스치곤 한다. 매일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이 뼛속 깊이 축복임을 깨닫는다. 잘 자고 잘 일어나는 것,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것,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것, 아이를 만져 보고 껴안아 보고, 심지어 화낼 수 있는 열정을 가진 것도.
더불어 나와 남편, 아이들의 삶의 어느 순간에도 불행이나 고난 같은 것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특히나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고 어려운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느 부모나 하는 생각이 간절해 지곤 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떠올려지는 글귀가 있다.
‘항상 햇빛만 비추는 땅은 결국은 사막이 된다.’
내 삶에 고난이라는 녀석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이들은 인생의 쓴 맛을 안 봤으면 좋겠다, 슬픈 일이 없이 늘 승승장구만 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마다 위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내게, 내 아이에게 항상 좋은 일만 있다면 인생이 훨씬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비바람이나, 인생의 추운 겨울이나, 건조한 봄, 뜨거운 여름 없이 마냥 청명한 가을이기를 바라는 소원이 들 때마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땅이 그렇게 해서는 비옥해지지 않음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좋은 땅이라 함은 좋은 흙으로 되어 있는 땅이라 한다. 좋은 흙은 물빠짐이 좋고, 공기가 잘 통하고, 더불어 땅에 스며든 물을 적당히 잘 품고 있고, 토양의 산성의 정도가 적당하고, 비료 성분인 유기물 함량이 풍부하고, 심지어 토양 안에 병원균이나 해충이 적은 토양이 좋은 흙이란다. 이것을 아이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내 아이가 자라 갖게 되었으면 하는 모습으로 바꿔 보았다.
내 아이가 좋은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교만하지 않고 늘 겸손하고, 어떤 힘든 일이 와도 잘 이겨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잘 품고 대인관계를 잘 하며, 자신이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그 일에서 인정받는 사람 되며, 그 안에 악함이 없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흙이 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암석이 풍화, 침식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분해되고, 물에 쓸려 옮겨지며 그 과정에서 유입되는 것들과 합쳐져 우리가 보게 되는 토양이 된다. 단 두 줄로 요약 되어 있지만 내가 흙이 되어 여행할라치면 쉽지 않은 시간이요, 여정이리라.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큰 아이의 뇌진탕이 마무리 되고 일상 생활로 돌아오며 큰 아이, 나의 인생의 토양은 어제보다는 좀 더 비옥한 토양이 되었으리라. 더불어 내 주변에 불어닥치는 고난을 두려워만 하는 마음에서 좀 더 용기를 내어 직면하는 엄마가 된 나를 보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직면할 인생에서 그 아이들 또한 용기 있게 도전하기를 소망하며….
며칠 전 막내가 다니는 한국학교에서 작년 머리를 다친 이주 어린이 성금을 모금했다. 그래 불연 듯 큰 아이의 뇌진탕 사건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어린 나무를 보며 안타까움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우리 가족이 믿는 신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이주네 가족들이 느낄 고통과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신이시여 이주네 가족을 위로해 주시며 이겨 낼 용기를 주시고, 이주를 깨어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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