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옛 유럽의 흔적을 느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유럽의 자취보다 더 찾기 힘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산(山)’이다. 유럽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이 상하이 인근 산 속에 숨어있었다니. 우리나라 산에 비하면 서산(佘山)은 동산에 지나지 않지만 이 산 안에는 두 개의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산 정상에 있는 유럽식 건물인 서산 대성당과 그에 비해 규모가 작고 산 중턱에 자리잡은 중국식 서산 중산성당이다. 올해로 140년이 된 서산성당은 기나긴 시간만큼 역사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시초1844년 천주교가 합법화 된 후 강남(江南)대목구의 예수회 관구장 ClaudiusGotteland신부는 서산을 방문하여 우거진 산림과 그윽하고 고요한 환경을 보고 ‘노약한 선교사들을 위한 수도회로 좋겠다’ 한 것이 서산성당의 시작이다. 프랑스 선교사 ClaudiusGotteland신부는 이 곳에서 천주교를 빠르게 전파하며 성당 건설 기반을 닦았다. ClaudiusGotteland신부는 다양한 건축양식을 한 건물에 적용시키며 나무, 목, 철, 들보 네 가지를 쓰지 않은 구조물을 짓고자 했다. 이를 기반으로 서산 성당의 기반과 영향력을 넓혀갔다. ClaudiusGotteland신부 후임인 예수회 회장 프랑스 Joseph Gonnet신부는 쉬지아후이에서 서산으로 옮겨와 신부들이 수양할 수 있는 방 다섯 개 정도의 공간과 작은 경당을 만들었다. 1864년 송장(松江)의 杜若兰신부가 산 정상에 육각정을 만들고 성모상을 만들어 바치며 그 때부터 서산은 성지로써 장푸치아오(张朴桥)등 인근지역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본격적인 건축은 예수회 소속의 프랑스 Leo Mariot수사가 건축 총 책임을 맡고 1871년 5월 24일 성모축일의 착공행사로 그 시작을 알렸다. 2년 뒤 산 정상에는 그리스 양식의 큰 경당이 세워지고 동시에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에 之자 형태의 십자가 길이 부설됐다. 23년 뒤 1894년에는 서산 중턱인 중산에 500명이 수용 가능한 중국 전통형식의 성당 ‘중산성모당’을 지었다. 성당 서쪽에는 예수 성심상을 모신 정자가, 동쪽에는 요셉 성인을 모신 정자가 있다. 1907년 십자가의 길 14처의 시작 부분에 산상기도를 드리는 예수님 성상을 세웠다.
증축
교우 수가 급증하자 중산의 소성당으로는 다 수용할 수 없어 산 정상에 웅장하고 현대화된 성당을 건립할 필요성이 생기자 1925년 4월 24일 서산 정상의 이전 성당을 철거하고 중건하기로 결정되었다. 포르투갈 국적의 Franceco Xavier Diniz신부가 설계하고 10년의 건축 기간을 거쳐 3천여 명 규모의 더욱 크고 웅장해진 새 성당이 건립되었다.
수난
일제 항전 시기인 1937년 11월 초순 일본군이 송장을 거쳐 서산에 도착하였을 때 당시 서산 성당은 임시 난민촌이 됐다. 일본군과 친일매국세력의 공격들로 서산성당에서 심었던 산 위의 나무들이 모두 베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66년 문화혁명 당시 중국은 종탑 위의 아기예수님을 받들고 있는 마리아상 청동상과 성당의 오색찬란 유리그림, 십자가의 길 14처의 예수 성상, 산원(山园)의 기도하는 예수상을 ‘사구(오래된,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로 취급하며 모두 파괴시켰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중국의 종교활동이 회복되며 서산성당도 상하이교구로 복속되었다. 그 때부터 시작된 대대적 복구 공사는 1984년에 완료되었지만 복구 초기에는 종 탑 꼭대기에 있던 아기예수를 바쳐 든 성모마리아 청동상의 행방을 알 수가 없어 임시로 철 십자가 상을 올려두기도 했다. 2000년 상하이교구의 봉헌으로 서산 성당의 상징과도 같은 아기예수를 바쳐 든 성모마리아 상이 복원되었다.
건축양식
서산성당은 유럽의 바로크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그리스, 로마, 고딕건축예술양식이 모두 녹아있으며 부분적인 재료와 건축수법에서는 중국 전통양식도 가미되어 있다. 서산과 한 몸 같이 자연에 녹아 든 서산대성당의 모습은 성당 벽의 붉은색과 산림의 녹색이 한데 어울려 성스러운 빛을 더한다. 성당 내부 역시 자연과 합일되는 설계를 지향했다. 전체적인 건축평면은 라틴 십자가형을 띄고 성당 내에는 4000여명의 인원이 수용 가능한 성당 내부 중앙 제대에는 대리석의 층계가, 좌우 창문에는 오색찬란한 유리 그림 창문이, 천장에는 청록색의 유리기와로 덮여있다.
8개의 종이 달린 종 탑 꼭대기에는 8미터 높이의 자색 청동 성모마리아상이 세워져 있다. 아기예수를 두 손 높이 바쳐 든 독특한 성모마리아상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어 서산성당의 상징과도 같다. 아이예수와 성모마리의 양 팔이 서로 십자가 형태를 이루며 전 세계 각지에서 서산 성지를 방문한 사람들을 환영한다.
서산성당은 20세기 40년 대부터 세계의 가톨릭 성지 중 한 곳으로 유명하며 국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지로 꼽힌다. 항일전쟁 시지인 1942년 교화 비오 12세는 서산의 성모 성당을 준대성전(Basilica Minor)으로 승급시켰다. 이는 프랑스 루르드 대성당과 같은 등급으로 극동 지역 성전으로는 최초로 교황에 의해 승급된 것이다. 현재는 국내외 성지순례객의 방문뿐만 아니라 웨딩화보 촬영지로도 인기가 좋다.
▷손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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