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 칼럼]
베이징 실험실의 원숭이
한국 증시에 위기의 그림자가 짙다. 지난 1년 주가(코스피지수)는 약 3.5% 떨어졌다. 이 와중에도 주가가 150% 이상 오른 종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한미약품이 주인공.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베이징의 서우두(首都)공항 근처에 자리 잡은 베이징한미약품을 찾은 이유다.
회의실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큰 중국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지도 곳곳에 붉은 점이 빼곡히 찍혀 있다. ‘영업 활동 지역을 표시한 것’이라는 게 임해룡 법인장의 설명이다. 중국 전역에 약 900명의 영업맨이 뛰고 있단다. 그는 “어린이 설사 변비약 ‘마미아이’와 기침 감기약 ‘이탄징’은 아동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며 “이제는 성인용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실적과 미래 전망이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소비자의 힘이다.
중국 소비자가 주가를 끌어올린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빙그레는 바나나맛 우유가 중국에서 ‘대박’이 나면서 지난해 주가가 약 100% 올랐다. 카지노 업체인 파라다이스 주가는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에 힘입어 지난 1년 사이 역시 두 배 올랐다. 화장품•패션 등 중국 소비자에게 노출된 기업 주가 역시 중국 판매 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한다. 그렇게 우리는 ‘중국 소비자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했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 비즈니스는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가 핵심이었다. 가급적 낮은 원가에 제품을 만들어 미국•유럽 등에 수출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성장 동력을 투자•수출이 아닌 소비에서 찾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제조 시대’에서 ‘소비 시대’로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 시대에는 가급적 비싸게 파는 기업이 이긴다. 그러기에 브랜드가 중요하고, 품질 관리가 필요하고, 또 마케팅이 요구된다. 중국에서도 이제는 이 같은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제조업에 치중했던 시기, 우리 기업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 큰 이익을 얻었다. 이는 1997년, 2008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미국이 돈을 거둬들이면서 또다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중국에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면, 이번에는 소비시장이 답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베이징한미약품의 R&D센터에 있는 50여 마리의 원숭이가 힌트다. 이들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실험용 동물이다. 사람 키우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단다. 그럼에도 이들을 기르는 것은 현지 실정에 맞는 최적의 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그 옹골진 현지화 노력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연구실 원숭이는 소비 시대 중국에 어떻게 적응할지를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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