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 칼럼]
보시라이 재판 '쇼' 관전평
중국연구소 소장2008년 미국 월가에서 터진 금융위기는 중국 정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 성향의 우파 세력에 밀려 비주류로 전락했던 좌파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좌파 지식인들은 국가 주도의 평균주의를 실현할 좌파 모델을 찾았다. 그들이 주목한 곳이 충칭(重慶)이었다. 당시 충칭은 농민을 위한 주택제도 개선 등 마오쩌둥 식 평균주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를 주도한 지도자가 바로 보시라이(薄熙來)였고, 그는 지금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의 지적대로 재판은 ‘쇼’처럼 보인다. 납득할 만한 형량을 정해 놓고, 적당히 공방을 벌인 뒤 마무리하는 수순이다. 재판부는 인민들에게 성역 없는 법치(法治)의 모범을 보이고, 피고 측은 당당한 변론으로 얼굴을 살리는 누이 좋고 매부 좋기 식 구도다. 그러나 거기가 끝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쇼’ 뒷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좌우 대결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보시라이가 중앙정권에 ‘반역’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은 좌파 성향 정책과 그에 대한 지식계의 호응이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2008년 충칭으로 몰려가 ‘충칭모델’을 찬양했던 바로 그 세력 말이다.
좌우 노선 투쟁의 대표적인 접점은 ‘헌정(憲政)’이다. 올 초 ‘자유주의의 본산’이라는 ‘남방주말’(잡지)의 기자들은 ‘헌정(憲政)의 꿈’이라는 제목의 신년사 제작 과정에 당국이 개입했다는 이유로 파업을 벌였다. 우파의 공격이다. 요즘은 반대다. 인민일보는 이달 초 ‘헌정’을 비난하는 기고문을 3일 연속 싣는 등 보수파의 반격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줬다. 전선은 경제로 번지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시장의 힘을 강조하는 우파 성향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국유기업의 독점을 풀고 정부 개입을 자제한다. 그 정책 역시 ‘국유기업은 산업의 근간(인민일보 보도)’이라는 좌파의 공격을 받고 있다. 리 총리의 작품인 상하이자유무역지구 설립도 공공연한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시진핑의 정책노선이 결정될 올가을 3중전회를 앞두고 좌우 투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
중국 지식인 사회를 연구해 온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는 최근 발행된 'China 3.0'이라는 책을 통해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3.0 시기’로 규정했다. 마오쩌둥 시대(1.0), 덩샤오핑 시대(2.0)와는 분명히 다른 새로운 버전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좌우 대립은 3.0 시대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재판은 오늘 예정된 피고 최후변론을 끝으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후 좌우 노선 투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좌파 세력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그 결과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경제판도를 바꿀 수 있다. 이번 재판 ‘쇼’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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