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은 24절기 중 동지(冬至)다. 동지는 겨울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는 가장 긴 날이다. ‘겨울(冬)을 마무리(終)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서서히 다가오는 겨울의 끝을 알리기도 한다.
소설(小雪)과 대설(大雪)을 거치면서 눈으로 변한 하늘 기운은 동지 이후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을 지나면서 꽁꽁 얼어붙는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생명체들이 체감으로 느끼는 추위는 소한과 대한이 더할 수 있지만, 동지 이후 깨어난 양의 기운이 혹독한 추위를 버티게 하는 생명력을 더해준다.
동지, 옛날에는 한 해의 시작을 뜻하기도
조선시대에 지어진 세시풍속서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순우리말로 바꿔 ‘작은 설’이라 했다고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 설 다음 가는 작은 설로 대접 받은 것이다. 그 풍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흔히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태양이 그런 것처럼 사람 역시 동지를 겪으면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고 본 것이다.
또한 동짓날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쳤는데, 나라에서 그 달력마다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 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눠 주었다. 각사(各司)의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했으며,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달력을 선사했다. 동짓날부터 태양이 점점 오래 머물게 돼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들었던 것이다.
동지 팥죽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나아가 동지를 동지답게 보내기 위한 세시 풍속으로는 단연 동지팥죽이 꼽힌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팥죽에는 축귀(逐鬼-잡귀를 쫓음)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 악귀를 쫓아냈고 사당에 놓아 신에게 올리기도 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기 때문에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어 민속적으로도 널리 활용됐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는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했고,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었다.
동지 팥죽, 추위를 쫓고 심장을 튼튼히 해주는 조상의 지혜
팥은 한방에서는 ‘적소두’라고 하는데 심장의 습기를 빼는 약재로 사용된다. 심장에 울체돼 있는 축축한 기운을 몸 밖으로 빼서 심장이 제 역할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다. 동지가 겨울이 극에 달한다는 뜻이긴 하지만, 실상 동지 이후부터 대한까지 본격적인 추위가 이어진다. 이 때 추위를 쫒고 심장이 제대로 쿵쾅쿵쾅 박동할 수 있도록 수분을 빼주는 것이다. 수분이 많으면 심장의 활동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겨울나무를 꺾으면 메말라 있다. 물기가 있으면 얼기 때문에 가을을 지나고 낙엽을 떨어뜨리며 나무 속 수분은 마르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몸속에도 수분이 많으면 기온이 낮을 때 그것이 얼어서 동상에 걸리기 쉽다. 이때 팥을 먹으면 몸속 수분 배출을 도와 동상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한방 처방인 ‘가감청궁탕’에도 적소두(팥)가 들어가는데, 이 처방은 심장에 열과 습이 있는 사람에게 많이 쓰인다. 자고나면 얼굴과 손발이 붓는 사람이나 자다가 오줌을 싸는 사람, 머리와 손발 등에서 땀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또한 면보자기에 싼 팥을 아랫목에 두어 따뜻하게 한 뒤, 아랫배를 얹으면 몸을 데우는 데 좋다.
동지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겨울 기후를 따뜻하게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내 몸을 따뜻하게 하라는 것이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 동지를 맞아 새 달력을 보며 다가올 새 봄을 준비하고, 지금 이 순간이 겨울답게 추운 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도록 하자.
▷조재환(상해함소아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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