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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본·소량생산의 만인 창업시대 열다

[2013-12-23, 18:44:25] 상하이저널
누군가 문득 기발한 디자인의 휴대전화 케이스를 떠올렸다고 하자. 대개는 그저 아이디어만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알리바바닷컴(alibaba.com)'을 알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재료와 디자인을 결정한 뒤 이 사이트에 접속해 중국의 각종 공장들과 'e메일 소통'을 한다. 영어는 중국어로, 중국어는 영어로 실시간 번역이 이뤄진다. 주문과 결제를 완료하면 얼마 뒤 서울 안방에서 시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소자본·소량생산의 만인 창업 시대를 연 세계 최대 B2B(기업 간 거래) 플랫폼, 알리바바닷컴의 위력이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240여 개국 수출입 업체가 이 사이트를 이용한다. 일종의 온라인 무역 박람회다.

 
이 회사 창업자는 중국의 마윈(馬雲·49)이다. 알리바바닷컴을 시작으로 세계 최대 온라인 오픈 마켓 '타오바오', 중국 1위 온라인 소매 쇼핑몰 '톈마오', 아시아 최대 결제시스템 '알리페이', '야후차이나' 등이 속한 알리바바그룹 회장이다. 이 회사가 중국 e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넘는다. 중국 소포 배달의 70%는 알리바바 거래분이다. 올 1분기 매출은 13억8000만 달러, 지난해 동기보다 71%나 증가했다. 게다가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15년 중국 e커머스 시장은 현재의 두 배가 넘는 539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된다.

왜소한 체구와 비호감 외모로 고생

지난 12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윈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어떠한 정치적·경제적 배경도 없이 성공한 점, 실리콘밸리 모델을 그냥 베끼지 않고 독창적 혁신을 이룬 점, 중국 환경문제에 맞서겠다며 올 5월 스스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점을 높이 샀다. 그는 당시 "정보기술(IT) 기업 CEO를 하기에 나는 늙은 편"이라며 70·80년대 태어난 세대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달 초에는 중국을 방문 중이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그와 다정히 찍은 '셀카'를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됐다. 페이스북 이래 세계 최대 규모가 될 알리바바닷컴의 기업공개(IPO)를 런던 증시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회사 시가총액을 1200억 달러(약 127조원)로 추산했다. 구글·아마존닷컴에 이어 인터넷 업계 3위 규모다. 마윈의 개인 재산 또한 36억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인생 전반부는 부(富)나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중국 항저우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개와 리더십이 있었지만 성적은 바닥이었다. 그가 중학생 시절부터 매달린 건 영어였다. 항저우의 유명 관광지나 호텔 부근을 서성이다 외국인을 만나면 재빨리 다가가 말을 텄다. 영어 실력은 빠르게 향상됐지만 수학이 문제였다. 결국 삼수를 하게 됐다. 신문팔이, 운전기사, 막노동꾼으로 일하며 주경야독했다. 키 1m53㎝, 깡마른 체구에 비호감 외모라는 이유로 호텔 취업 면접에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84년 항저우사범학원 외국어과에 입학한 것도 정원 미달 덕분이었다.

대학만큼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월급 12달러의 항저우전자공업대의 영어강사가 됐다. 그 생활을 5년째 하던 중 정년퇴임 뒤 어렵게 사는 동료 강사들을 보며 새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이보'라는 통·번역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하지만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돌파구는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95년 미국 출장 길에 인터넷이라는 걸 처음 접했다. 신기해하며 '맥주(Beer)'와 '중국(China)'이란 단어를 넣어 검색해 봤으나 결과는 무(無). 인터넷에서 중국은 아직 미지의 세계였다.

무릎을 친 그는 항저우로 돌아오자마자 주변의 반대를 뚫고 일종의 웹페이지 제작사를 차렸다. 스스로 인터넷 전도사를 자처하며 사력을 다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중국 대외경제무역부 홈페이지 제작 중 만난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과의 인연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제리 양은 그에게 야후차이나 입사를 권했지만 마윈은 창업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 99년 드디어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던 중국의 중소기업과 세계 시장을 연결하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었다. 알리바바닷컴의 시작이었다.

항저우의 20평 아파트에 18명이 모여 창업을 준비했다. 식사만 겨우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돈으로 버티며 사이트를 열었다. 그때서야 중국에도 서서히 인터넷 붐이 일기 시작했다. 우선 매스컴이 알리바바닷컴을 주목했다. 서서히 가입자가 늘었고, 그해 9월에는 골드먼삭스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는 데 성공했다. 한 달 뒤 마윈은 일생의 은인이자 사업의 멘토를 만난다.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었다. 손 회장은 마윈의 얘기를 채 다 듣지도 않고 즉석에서 20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손 회장은 2003년 마윈이 오픈 마켓 타오바오를 시작하는 데 결정적 조언을 했다. 이듬해에는 추가로 82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알리바바닷컴 지분 37.7%를 가진 최대 주주다. 하지만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는다. 이는 2006년 17억 달러를 투자한 제리 양의 야후 또한 마찬가지다.

"내 성공은 돈·기술·계획 없었기 때문"

마윈의 혜안과 배짱, 마케터로서의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이베이와의 한판 승부다. 2003년 이베이는 중국 대표 포털사이트인 소후·바이두 등과 독점 광고게재 계약을 맺고 대대적인 대륙 공략에 나섰다. 마윈의 타오바오는 포털에 광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양쯔강 악어이고 이베이는 바닷속 상어다. 바다는 몰라도 강에서라면 우리가 이긴다"는 말로 자신감을 보였다. 포털 대신 개인 사이트를 집중 공략해 이베이의 10분의 1 비용으로 뛰어난 마케팅 효과를 거뒀다. 아울러 유료 회원제를 무료로 전환해 이베이를 압박했다. 결국 이베이는 2005년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만다.

마윈은 쇼핑몰만 만든 것이 아니다. 전 세계 7억 명이 사용하는 결제수단이자 미래 금융기업 '알리페이', 클라우드 기술에 기반한 독자적 모바일 운영체제(OS) '알리윈'까지 만들었다. 중국과 아시아를 본거지로 삼아 e커머스의 모든 것을 기획하고 제공하는 기업. 이것이 알리바바그룹의 비전이다.

지난 10일 '한·중 인터넷 원탁회의' 참석차 깜짝 방한한 마윈은 서울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성공한 것은 돈도, 기술도, 계획도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한 푼도 귀하게 썼고, 기술을 몰라 보통 사람도 편히 쓸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으며, 계획을 세우지 않아 변화하는 세상에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간혹 돌출행동과 국수주의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하지만 마윈이야말로 현재의 중국, 나아가 미래의 중국을 가늠케 하는 대표적 기업인이다. 그 넓은 땅과 13억5000만 명 인구, 더하여 이토록 집요하고 저돌적인 창업자라니. 중국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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