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울고 있는 기자 옆에서 카메라도 따라 운다고 한다. 그날은 바로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이다. 60여 년의 기다림 끝에 3일 간의 짧은 만남이 끝나는 날이다. 이산가족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이산가족에게는 또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이별이 시작한 셈이다. 어떤 할머니는 버스를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손 한 번만 더 잡아 보겠다고 소리쳤고, 어떤 할머니는 출발하는 버스를 두드리며 따라가다가 울었다. 모두들 통일이 오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자고 약속했다. TV 화면 건너편 세상이었지만 나에게까지 그 아픔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빨리 통일이 와서 여기에 있는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날을 다시 한 번 뉴스로 전해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산가족 상봉 첫날, 나는 뉴스에서 일반 가정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보았다. 존댓말로 말을 시작했다가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하는 가족들, 부모님의 사진과 부모님의 기억을 서로 맞추어 보면서 가족인 것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참으로 닮은 형제들인데 왜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지 답답했다. 나에게는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가 있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이나 친구들 이야기도 함께 하고,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모두 함께 한다. 동생들과 헤어져서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살면 어떨까 하고 잠깐 상상해보았는데 정말 아찔했다.
한국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다. 분단된 이후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점차 전쟁에 대한 기억이 지워져 가고 있다. 다른 정치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생활을 하고, 다른 문화를 만들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원래 하나의 핏줄이었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같은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잊고 있는 것 같다. 한 가족이 남과 북에 떨어져 현재까지도 이산 가족의 아픔을 겪고 있는 데도 말이다. 60여 간의 기다림 끝에 3일 간의 만남. 만나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뎌야 했던 가족들에게 또 다시 이별이라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슬픈 광경인 것 같다.
나는 사실 통일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오직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6.25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소설책을 읽으며 전쟁이라는 것을 상상해보곤 한 것이 전부다. 나에게 전쟁과 통일은 아마도 옛날이야기이거나 소설책의 소재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제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된 올해 2월,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뚜렷해졌다. 최근 뉴스에서 통일에 관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보았는데 통일을 할 필요 없다는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이렇게 말하긴 싫지만 이산가족의 뉴스를 보고 함께 마음이 아팠던 나에게는, 굳이 안 해도 된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살고, 기쁜 일고 슬픈 일을 함께 겪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초적인 행복이 아닐까. 그런데 가장 가까운 부모와 형제와 원하지 않는 이별을 하고,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르고, 살아있는 것을 알아도 볼 수 없이 늘 그리워하기만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을 뺏어가는 것이다. 통일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만 나는 얼마 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본 이후로 통일의 이유를 이것으로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이 아프지 않으면, 자기만 가족과 함께 살고, 자기만 통일에 관련하여 부담을 갖지 않으면 된다는 것일까. 저 분들은 가족을 보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보냈고, 다시 만나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까? 이렇게 헤어지면 이젠 정말 영원한 이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스스로 치료해야 한다. 누가 우리의 아픔을 먼저 알고, 상처가 낫도록 도와주겠는가. 우리는 통일로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뉴스에서 한 할머니가 “남북통일이 되지 않으면 정말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 라고 슬프게 얘기하는 장면이 나의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이렇게 그들은 남북통일을 간절히 갈망하고 있다. 아무리 휴전 상태라고 해도 누가 무슨 권리로 가족을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얼마 전, 나는 구인환의 단편소설 <숨 쉬는 영정>을 읽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을 찾는 이야기이다. 영정은 죽은 사람의 사진인데, 숨을 쉬고 있다는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가지고 읽었다. 북에서 내려온 동생을 데리고 온 태규는 폭격이 있었을 때 동생을 잃고 동생을 매우 그리워했다. 동생을 한번 찾을 기회가 있었지만 태규는 사업이 망했을 때라 동생 만나기가 부끄럽다고 안 만났다. 이후 태규는 건강이 나빠지고, 다시 동생을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는데, 결국 죽고 말았다. 죽었지만 동생을 만나지 못 하고, 죽은 형은 이 세상에서 편하게 떠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숨 쉬는 영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큰형으로서 동생들을 잃었다면, 잃은 순간부터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비극적 결말이 속상하고, 안타까웠는데, 생각해보니 이것은 소설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시간은 점차 흘러가고 있고, 이산가족의 슬픔은 더 커지고 있다. 90세의 할아버지와 84세의 할머니가 응급차로 금강산으로 향했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돌아왔다는 기사를 보았다. 2032년에는 이산가족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거라는 뉴스를 보았다.
통일이 되면 인구가 많아지고, 국토가 넓어지고, 자원이 풍부해져서 경제 강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전쟁 준비로 쏟아 부은 국방비를 줄일 수 있고, 또한 대륙으로 진출하기도 쉬워진다. 여러 가지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산가족을 위해서라도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익이 있을까 저울질하는 통일 정책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가족, 우리의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이 하루라도 더 오래 가족과 더불어 살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빨리 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 들은 수수께끼가 생각난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일이 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만나면 또 다시 하나가 된다. 물과 물이 만나 또 하나의 강물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가 되어서 역사에 한 물줄기로 흘러가면 좋겠다.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 물은 갈라져도 다시 하나가 되고, 상처가 있어도 흔적도 없이 다시 하나가 되어 흐른다. 강물은 자리에 머무르지도 않고, 힘을 합하면 커다란 둑도 무너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통일은 강물처럼 그렇게 왔으면 좋겠다. 남과 북이 함께 흘러 세계 속에서 멈추지 않는 소리로 세계를 힘차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서면 좋겠다.
▷박준성(항주국제학교 9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