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36)
농민 백남기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1. 자기 이름 뒤에 직업을 붙여 소개해도 좋을까?
“오늘은 경제 전문가이신 ○○대학교 교수 김 아무개 박사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 아무개 박사님.”
“네, 반갑습니다. ○○대학교 김 아무개 교수(또는 박사)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께서는 남이 소개를 하든 스스로 말하든 이렇게 이름 뒤에 직업이나 지위를 붙여 말하는 것이 괜찮아 보이십니까?
대체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나 직위를 지닌 사람일수록 그것을 이름 뒤에 붙이기를 좋아하는 듯합니다. 즉 장관, (국회)의원, 판사, 검사, 변호사, 기자, 프로듀서, 감독, 사장, 교수, 교장, 의사, 박사, 목사, 신부 등이 흔히 그렇게 소개해 주기를 바라고, 때로는 스스로도 그렇게 소개합니다. 그러나 군대와 같은 특수한 계급사회라면 또 몰라도, 만민이 평등한 일반 사회에서는 굳이 그런 말을 붙일 까닭이 없습니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직업, 직급 등을 먼저 말하고 자신의 이름을 맨 나중에 말하는 것이 예의에 앞서 원칙입니다. 즉, “네, ○○대학교 교수 김 아무개입니다.”, “네, ○○당 국회의원 박 아무개입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남을 소개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 ‘선생’이라는 호칭
남의 이름을 부를 때 보통 이름 뒤에 ‘씨’를 붙입니다. 요즘은 한자어 ‘씨’ 대신 우리말 ‘님’을 붙이기도 하지요. ‘씨’나 ‘님’보다 좀 더 높이고 싶다면 ‘선생’을 붙이면 됩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좋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선생’만 써도 괜찮겠지요.
그러니까 ‘법무법인 ○○ 대표 이 아무개 변호사를 모시고~’보다는 ‘법무법인 ○○ 대표 변호사 이 아무개 씨(선생/선생님)를 모시고~’라고 하는 것이 바릅니다. ‘교수님’을 직접 부를 때에도 ‘교수님’보다는 ‘선생’ 또는 ‘선생님’을 권하고 싶습니다. ‘교수’는 그저 직업일 뿐이지만, ‘선생(님)’은 존경을 담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직업이나 직위로 대접받기보다는 인간됨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진정 훌륭한 사람 아니겠어요? 대학시절, 어느 ‘교수님’께 ‘선생님’이라고 했다가 화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께 가졌던 존경심을 잃고 말았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3. ‘백남기 선생’을 애도하며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선생’이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그분의 죽음을 둘러싸고 어이없는 공방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만, 저의 눈에는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눈에 띕니다. 바로 ‘백남기 농민’이란 표현입니다. 볼 때마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영 개운치 않습니다. “농민이 교수나 박사보다 못할 것 없으니 ‘아무개 교수’, ‘아무개 박사’ 하듯이 ‘아무개 농민’이라고 쓰자.”라는 생각인 듯한데, 굳이 속물스런 표현을 흉내 낼 까닭은 없습니다. ‘보성 농민 고 백남기 선생’ 정도가 어떨까 합니다.
“네, 이 아무개 사원입니다.”
“네, 정 아무개 노동자입니다.”
“네, 김 아무개 경비원입니다.”
“네, 윤 아무개 석사(학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지요? 교사인 저 또한 삼십년 넘도록 “김효곤 교사입니다.”라고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학교 교사 김효곤입니다.”라고 했을 뿐이지요. 요즘 교사란 직업이 학생들의 장래 희망으로 1, 2위를 다툰다고도 하지만, 남들한테 내세우기에는 아직 부족한 직업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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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이후 현재까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월간 <우리교육> 기자 및 출판부장(1990~1992), <교육희망> 교열부장(2001~2006) 등을 역임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강좌를 비롯하여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편집위, 한겨레문화센터, 다수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 기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말과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또한 <교육희망>,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논술) 강좌 등을 기고 또는 연재 중이다.
ccamya@hanmail.net [김효곤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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