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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식민 역사① 식민지에서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로-마카오

[2016-11-13, 05:50:43]

동아시아 식민 역사①
식민지에서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로-마카오

 

 

 

우리는 ‘마카오’를 생각할 때 비단 동양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이미지 역시 함께 떠올린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원인은 마카오가 거쳐온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만 해도, 마카오는 중국에 포함된 지역이 아닌,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는 포르투갈령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러나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기간 동안, 고통만 겪은 것이 아니라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다.

 

새로운 이름, 마카오
마카오는 본래 중국에서 ‘아오먼(澳门)’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어떻게 ‘마카오’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인지 살펴보자. 처음 포르투갈인들이 아오먼에 정착할 당시, 그들은 도교 사원인 마쭈거(妈祖阁, 아마 사원) 근방으로 거처를 정했다. 그들이 현지인에게 그 지역의 지명을 물으니 현지인은 사원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착각하여 ‘마쭈거’라고 알려주었는데, 이를 잘못 알아들어 마카오라고 부른 것을 시작으로 아오먼은 색다른 이름, ‘마카오’를 얻게 되었다. 이렇듯 현재 전세계에 알려진 마카오라는 이름도 포르투갈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식민 지배의 배경
마카오는 예로부터 유럽인들에게 중국 진출 거점으로 주목 받고 있는 지역이었다. 그리하여 마카오를 탐내던 포르투갈인들은 1553년 물에 젖은 화물을 말린다는 구실로 그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 그리고 뇌물 공세를 통해 청 관리들이 자신들의 불법체류를 눈감아주게 했다. 마카오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도 이때 즈음이다. 매년 행해지던 뇌물 공세와 함께 포르투갈 체류인의 수는 점점 불어났고, 1572년 명나라 조정은 매년 500냥의 지대를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체류를 공식 승인했다.
중국과의 유일한 교류 거점이었던 만큼, 마카오는 서양 열강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곳이었다. 이는 네덜란드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던 포르투갈인들은 네덜란드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성을 쌓고, 온 병력을 동원하여 저항한 결과 그곳을 지켜낼 수 있었다. 1575년에는 로마 교황이 포르투갈 정부의 후원으로 마카오 관구(管区)를 설립하였다. 그 후 마카오는 본격적으로 포르투갈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었고,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배 하기 전까지 중국과 서양의 유일한 교류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사실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정식으로 지배할 생각이 없었으나, 그런 포르투갈을 자극한 것은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은 아편전쟁에서 청에게 승리하여 홍콩을 차지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포르투갈은 아시아에서의 세력 다툼에 영국에게 위기감을 느꼈다. 따라서 포르투갈은 아오먼(澳門)반도 전역과 타이파•콜로안 두 섬을 점령하고, 1887년 청•포르투갈조약을 맺어 마카오를 제3국에 양도하지 않는 조건으로 영구 점유를 승인 받았다.

 

식민 지배 시기
서양 열강들에게 중국 진출의 발판이 돼주었던 만큼, 마카오는 무역으로 번성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아편전쟁 이후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게 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홍콩을 통한 중국과 유럽 국가들의 직접 교역 시대가 열려 홍콩은 급속한 성장을 이룬 반면에 마카오의 무역항은 그 위상을 잃어갔다. 결국 열강의 이권 침탈로 나약해지던 본국처럼, 마카오 역시 점차 쇠퇴해갔다.
제 2 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포르투갈은 중립을 선언했다. 이 덕분에 홍콩과 광저우가 일본군에게 점령된 것과 달리 마카오는 무사할 수 있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중립 항구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게 점령 당한 지역의 난민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던 일도 있었다.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자 포르투갈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공격을 우려했으나 중국은 이곳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포르투갈의 영유권을 존중했다. 마오쩌둥 시기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홍위병들이 국경으로 몰려온 적도 있었으나, 포르투갈은 막아내었다. 하지만 이 사건 때문에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라는 영토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막중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중국에게 반환을 제안했으나 중국은 이를 거절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정부와 서양 국가들 간의 교류는 전무했으므로, 마카오만이라도 중개 무역지로 놔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국으로 반환되다
종전 이후 1951년,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해외 현으로 지정하여 포르투갈인이 지배하는 식민지 경영을 꾀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카오 폭동을 초래했다. 1966년, 이에 반발한 중국계 주민이 포르투갈 투쟁(마카오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 폭동을 계기로 마카오 내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1974년 포르투갈 본국에서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 정권이 교체되었다. 새로운 정권은 해외 식민지 포기를 선언했다. 마카오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중국 측에게 또다시 반환을 거부당했다. 당시 중국은 영국과의 홍콩 문제 해결에 집중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84년 홍콩 반환조약 체결 이후, 포르투갈 정부는 또 다시 반환 의사를 표명했다. 드디어 중국이 이것을 받아들이면서1999년 홍콩과 유사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논리로 마카오는 중국에 반환된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최소 2049년까지는 독자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어길 시 포르투갈 정부가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다.

 

식민 지배의 영향
세계의 식민 지배를 당했던 다른 나라들도 그렇듯이, 식민 통치의 잔재는 문화, 특히 언어에서 많이 나타난다. 현재 마카오의 공용어는 중국어(광동어)와 포르투갈어이다. 물론 실생활에서는 광동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약 10%의 마카오 원주민들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마카오에 와서 포르투갈어만 써도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소수이지만 마카오에서 변형된 포르투갈어인 마카오어도 일부 주민들에게 사용된다.
앞서 말했듯 마카오에는 마카오 원주민으로 포르투갈인과 혼혈된 중국계인 마카니즈(마카이엔사)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포르투갈어와 광동어를 둘 다 모국어로 사용하며, 중국의 지배에 거부 의사를 표명한다. 따라서 그들은 여전히 포르투갈 국적을 유지하고, 자신들이 중국인과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그룹임을 주장하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에 이미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주민 및 그 후손 전원에게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했다. 특히 포르투갈 국적법이 개정된 1981년 11월 19일과 그 이전에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태어났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혈통과 상관없이 포르투갈 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반환 이전 마카오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43만명의 주민들은 포르투갈 국적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영국이 홍콩 반환 이후 그곳의 주민들을 외면한 것과는 비교되는 처사라고 세간에 평가 받고 있다.
포르투갈은 식민통치 후기로 갈수록 마카오의 자치권을 인정해주며 온화정책을 펼쳤으므로 마카오 주민들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남게 되지는 않았다. 반환 이후에도 그들이 포르투갈 국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은 오히려 그들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줬을 것이다.
현재 중국과 마카오는 일국양제의 형식을 받아들여 마카오 내부에서 자치적으로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2049년까지만 허용된다. 따라서 마카오는 독자적인 정부를 운영하며 여러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마카오는 서양 열강의 이기심과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를 많이 봤다고 볼 수 있으나, 식민 지배로 인해 유럽 문화를 본국에 비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며, 이는 지금의 마카오를 있게 한 주춧돌이 되었다. 앞으로도 마카오가 동서양의 장점만이 조합된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를 가진 지역으로 더욱 알려지기를 바란다.

 

고등부 학생기자 여지원(상해한국학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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