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에 의해 지배 당하던 싱가포르
19세기 초까지 싱가포르는 네덜란드의 영향 하에 있었다. 1819년 영국의 래플스(Sir Thomas Stamford Raffles)가 조호르 왕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싱가포르의 개발을 착수하였다. 1823년 6월 7일, 래플스는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싱가포르 전역을 영국동인도회사에 영구적으로 할양하는 조약을 성립시켰다.
1826년 싱가포르는 말라카와 뻬낭에 흡수되어 동인도회사 지배 하의 해협식민지로 편입되었고, 1867년 싱가포르의 관할권이 영국 식민지청으로 이전되면서 본격적인 식민지시대가 개막되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싱가포르는 일본에 의해 점령당하였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1946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은 크리스마스(Christmas)섬과 코코스(Cocos)섬을 관할하였다. 1955년 영국은 신 헌법을 채택하여 32명의 입법 의원 중 25명의 싱가포르 인을 선출하였다. 1957년 런던에서 개최된 헌법 회의는 원칙적으로 싱가포르가 독립국가가 된다는 데 동의하고 싱가포르에 대해 완전한 국내 자치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외교, 국방 및 헌법 정지에 관한 권한은 여전히 영국 정부가 보유하였다. 1958년 싱가포르 국가 법(The State of Singapore Act)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어 싱가포르 국가 성립 및 싱가포르 시민권 부여 등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또한, 크리스마스 섬은 오스트레일리아로 관할권이 이전되었다.
1961년 5월 27일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man) 말레이 총리는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라왁, 브루나이 및 북보루네오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연방 설립을 제의하였고 싱가포르 정부는 이에 동의하였다. 1963년 7월 9일 말레이시아 협정 서명으로 인해 같은 해 9월 16일에 말레이시아 연방이 성립됨으로써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
식민지 시대의 발전
영국이 싱가포르에 진출한 이후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물건이 유럽으로 수출되는 전진 기지가 되었고, 자유무역항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물건이 거래되고 돈이 모이자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1819년 싱가포르 인구는 1000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 해협식민지가 되면서 인구가 급증해 1840년에는 인구가 3만 5000명에 달았다. 1860년대에는 8만 명, 1901년에는 23만 명으로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영국 해군이나 그 가족들, 그리고 무역 위착 회사들이 싱가포르로 속속 진출했다. 거대한 시장의 보유자인 중국에서도 많은 장사치들이 무역을 하러 싱가포르로 들어왔다. 또한, 1840년대에 말레이 반도를 중심으로 주석 광산이 개발되어 주석이 활발하게 수출되자 이번에는 노동력을 파는 사람들이 싱가포르로 몰려들었다. 그러니 싱가포르에는 지금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거주한다.
말레이시아 연방에서부터 원치 않던 ‘독립’
1963년 가입한 말레이시아 연방은 싱가포르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었다. 정책의 갈등도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말레이시아의 반(反)중국인 정서였다. 말레이시아는 자국 내 화교 문제는 껄끄럽게 생각해 오고 있는 반면에 싱가포르 자치 정부는 중국계가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연방정부 입장에서 싱가포르의 대표 정치가 리콴유는 말레이시아 소수 민족 문제의 대변인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고 결국은 연방에 안정성도 해칠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후 싱가포르와 연방은 계속해서 갈등을 빚었다. 그 갈등을 더 심화하게 한 것은 바로 1965년 7월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홍림지구 2차 보궐선거였다. 리콴유의 인민행동당이 다시 공산 계열과 맞붙게 된 것이다. 이 때, 반공을 지지하던 연방 주도 세력인 말레이시아는 이념적 색채마저 무시한 채 공산 계열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결국, 그 해 8월 싱가포르는 분리와 독립이라는 이름 하에 연방으로부터 추방을 당했다. 그들의 완전한 독립이 원치 않게 이뤄진 것이다.
독립 그 후, 지금의 싱가포르
지금의 싱가포르는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많은 종족의 사람들이 산다. 그 중에 인종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당연히 중국이다. 인종의 다양성 말고도 다양한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다양한 곳에 남아있다. 그 중 대표적인 예로는 ‘리틀인디아’를 들 수 있다.
리틀인디아는 싱가포르 강 동쪽에 위치한다. 이 곳은 세란군 로드를 중심으로 인도계 싱가포르인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19세기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노동력 제공을 위해 싱가포르로 넘어왔다. 비록, 지금 싱가포르의 인도인 비율은 6%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인도인들은 이곳에서 인도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곳에 가면 인도 고유의 옷을 걸친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고, 인도 음식점에서 풍겨 나오는 향신료 냄새는 인도의 고유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싱가포르는 식민지를 당했다는 아픔이 있어 자신의 국가안보에 매우 까다롭다. 싱가포르에서는 불법 마약이나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매울 가혹하다. 이렇듯, 아직 싱가포르는 자신의 뼈 아픈 역사 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이제 어엿한 한 나라이고 경제 발전 또한 많이 이뤄냈다. 이제 더 이상 싱가포르는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고등부 학생기자 박주은(상해한국학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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