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2016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전 미국 국무장관이자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의 당선 이후, 현재 그의 발언과 미국 주류 언론의 곡해 등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전까지 트럼프라는 인물은 극우 미치광이로 인지되고 있음이 자명했다. 하지만, 그가 그저 막말꾼이자 허풍쟁이에 불과한 필부였다면 과연 쟁쟁한 공화당 후보들을 추월하고 대선후보로써 지명당할 수 있었을까? 정치란 이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현혁 시킬지, 그리고 그로 얻은 유명세(악명일지라도)를 어떻게 자신의 이상과 부합시킬지 완벽히 자각하고 있었기에 대통령으로 당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론이란 언론과 그 성질을 달리한다. 니체가 말했듯이, 여론이란 사적 태만(public opinion-private indolence)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사적 소견은 공적 태만이 아닌가? 트럼프와 힐러리라는 대결 구도가 구축되었을 때, 트럼프에 적대적인 주류 언론 매체들은 그에게 극우주의에 찌든 백인 우월론자라는 이미지를 씌움과 동시에 힐러리를 비호했다. 이는 성공적이었고, 대선은 힐러리가 손쉽게 이길 듯했다. 현실은 사뭇 달랐다. 트럼프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는 사회의 기득권들에게 소외당하고 있다고 인지하던 백인들을 매료시켰다. 이런 기조는 언론들의 트럼프에 대한 ‘백인 우월론자’ 프레임을 심화시키는 데에 요긴히 사용되었지만, 이럴수록 그의 지지층은 두터워졌다. 트럼프는 그의 지지 세력을 간택하여 그들에 집중했고, 그 전략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반면에, 언론들의 본의 아닌 감언이설에 현혹된 힐러리는 유세를 보다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고, 그녀의 지지 세력은 낙승을 예상하며 나태함의 늪에 빠졌다.
마이클 플린과 트럼프의 미국에 의한 질서 구상
최근 국제 정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널드 트럼프란 이름 옆에 마이클 플린이라는 인물이 붙는 것을 심심찮게 목격했을 것이다. 플린은 군 장성이자 전 미국 국방정보국 국장이었고 현재 트럼프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국가 안보 보자관이다. 국방정보국장으로서, 그는 국무부의 외교 중심적 접근을 위시한 스마트 외교에 대한 반발로 인하여 마찰을 빚었고, 그로 인해 2014년 군으로부터의 은퇴를 선언한다. 그 후, 그는 트럼프 진영에 가담, 취약점이었던 외교와 안보 측면을 보완했다.
당선인 발표 전부터, 플린은 전 세계를 배회하며 ‘강한 미국’이란 이상에 부합하는 설계를 해왔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구상은 트럼프를 통하여 실체화되고 있다. 고로, 트럼프는 신 고립주의를 신봉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그는 신 개입주의의 선구자가 될 것이며, 지금부터 그 전조가 포착되고 있다. 그의 신 개입주의는 보다 능동적이자 물리적일 것으로 사료되는데, 이는 그의 행정부가 군사 쪽 인물들에 극심히 치중되어있다는 것, 아태지역에서의 적극적 실력 행사 표명 등으로 입증된다. 점점 난세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바로 지금이 치세에 대한 환상에 의한 현혹에서 벗어날 때이다.
학생기자 강지우 (콩코디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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