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철광석 가격담판'의 구도가 올해부터 크게 달라졌다.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철강 패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년 봄 국가별로 진행되는 이 담판은 철광석 장기 공급(1년단위) 가격을 결정하는자리다. 때문에 그해 국제 철강가격은 물론 철강관련 제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로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킨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담판의 주인공이 신닛테쓰에서 중국 바오스틸로 바뀌었다는사실이다.
지난주 열린 3차 담판에서 전세계 철광석 공급의 70%를 좌우하는 호주ㆍ영국ㆍ브라질의 BHP빌리톤, 리오틴토, CVRD 등 철광석 3대 메이저는 가장 먼저 중국 바오스틸과 마주앉았다.
매년 일본 5대 철강회사를 대표하는 신닛테쓰와 가장 먼저 담판을 벌인 뒤 가격을결정하면 한국, 중국 철강회사들이 그 가격을 수용하던 관례를 뒤집은 것이다. 지난해에도 신닛테쓰가 철광석 가격을 무려 71.5% 인상하는 협상안에 합의하자 한국,중국 철강회사들이 차례로 그 기준가격을 수용했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중국의 태도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중국은 지난해 철광석2억7500만t을 수입했다. 이는 2004년보다 32.3% 증가한 것으로 전세계 철광석 교역물량의 43%에 해당한다.
우선 중국 상무부는 지난 16일 "중국 철강회사들이 세계 철광석 가격 결정에 보다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일본이 결정한 가격을 더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중국 최대 철강회사인 바오스틸이 중국 내 16개 주요 철강회사를 대표해 가격협상권을 전면 일임받은 것도 중요한 변화다.
중국강철공업협회는 "올해부터 중국 내 여타 철강회사나 철광석무역회사는 철광석메이저들과 개별적으로 가격교섭에 나서지 못한다"고 선언하고 "바오스틸이 결정한가격을 중국 내 모든 철강회사가 수용할 것"이라며 바오스틸의 협상력에 힘을 싣고있다.
지난 1월 중국 철강회사 2곳이 현물시장에서 개별적인 철광석 구매에 나섰다가 중국강철공업협회에서 엄중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중국이 이처럼 강경한 협상 태도를 보이자 바오스틸보다 이틀 뒤에 가격담판에 나선 신닛테쓰도 "중국의 가격협상 결과를 지켜보자"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돼 지난주까지 3차에 걸쳐 진행된 철광석 가격담판은 예상대로양측의 이견만 확인한 채 무산됐다. 아직은 탐색전이라 할 만하다.
중국측은 "중국 조강생산량이 2005년 24.56% 늘어났으나 올해에는 철강산업 구조조정으로 10%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며 "철광석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광석 현물시장 가격도 지난해 4월 t당 83달러에서 지난해 말에는 66달러로 하락하는 추세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중국은 앞으로 5년간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통해철강 생산량을 5500만t 감축할 계획까지 제시해놓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인도에서 수입하는 철광석이 지난해 36% 늘어나는 등 철광석 수입처가 다변화되고 있기때문에 철광석 메이저들에 끌려가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반면 철광석 메이저들은 "중국의 철광석 수요 증가로 공급 부족 현상이 여전하다"며 20% 이상의 가격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때마침 중국 철강회사들이 가격인상에나서자 '그것 보라'며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중국이 세계 철광석 가격담판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자 이를 둘러싼 장외전쟁도 볼 만하다. 영국계 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는 철광석 3대 메이저 중 하나인 리오틴토그룹이 영국계 호주기업임을 의식한 듯 "중국이 철광석 가격 담판의 주인공임을 자처하고 있으나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라며 비꼬는 기사를 내보냈다.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이 "중국이 2개월 동안 사용할 철광석을 이미 쌓아두고 있는등 재고량도 충분하다"며 바오스틸의 협상력에 연일 힘을 보태고 있는 것과 대조를이룬다.
철광석 가격 담판은 오는 3월 말까지 타결돼야 한다. 4월 1일까지 가격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후 6개월 동안은 지난해 공급가격을 연장 적용하게 된다.
올해 철광석 가격담판은 일본을 제치고 중국이 주역으로 데뷔함에 따라 예년에 비해 한층 힘겹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