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리터러시 ②] ‘고려’의 흔적, 타이창박물관(太仓博物馆)

[2024-11-14, 17:23:15] 상하이저널
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타이창박물관

타이창으로 날아든 ‘고려’의 흔적
땅속 물속 유물로 가득 ‘타이창박물관 太仓博物馆’

곡식이 무르익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상하이 주변의 화동지역 사람들은 북방으로 곡식을 보내기 전에 이를 한 지역에서 집산해 저장하곤 했다. 그 중심이 바로 타이창(太仓)이다. ‘거대한 창고’라는 의미를 가진 이곳에 타이창박물관이 있다. 상하이에서 약 60km 떨어진 장쑤성 타이창시에 위치한 타이창박물관은 오늘날까지도 타이창의 역사적 중요성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타이창박물관 전경]

우아한 학 문양의 고려 상감청자 고족배

타이창박물관에서 놓쳐서는 안 될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꼭 같은 고려 상감청자 고족배다. 우아한 학 문양이 새겨진 이 고족배는 고려청자의 독특한 상감기법(象嵌技法)으로 제작됐다. 이는 먼저 흙에 문양을 새기고 칼로 도려내어 그 부분에 흑토나 백토를 감입한 뒤, 표면을 얇게 깎아 정교한 문양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고려의 학이 새겨진 이 도자기가 어떻게 타이창에서 발견되었는지 상상해보는 것 또한 전시를 관람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사진=고려청자상감고족배(타이창박물관 소장)

[사진=고려청감청자고족배(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타이창박물관은 매력과 주요 볼거리

타이창박물관은 유명 박물관들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경매나 수집을 통해 구입된 유물이 아닌, 발굴을 통해 출토된 깨진 유물들로 가득하다. 보통 박물관의 유물은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은 유명 경매회사를 통해 구입되거나 도로나 아파트 공사 중 발견된 출토 유물로 나뉜다. 타이창박물관의 전시품들은 대부분이 원나라(1271-1368) 시대의 것들이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땅 속에서 원형을 유지한 도자기와 쌀, 이를 싣고 중국 연해를 항해했던 선박의 흔적이야말로 타이창 박물관의 주요 볼거리다.

원나라 고대 선박의 폐기 흔적

박물관 1 층에 들어서면 원나라 시대의 원형을 복원한 거대한 두 척의 배가 눈길을 끈다. 이 배들은 사용이 끝난 후 고의로 구멍을 내어 폐기된 흔적까지 그대로 전시돼, 관람객들이 당시 배 하부에 난 구멍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송대 이후의 중국 선박은 근해를 항해하는 평저선(平底船)과 먼 바다를 빠르게 항해할 수 있는 첨저선(尖底船)으로 나뉜다. 박물관에 전시된 모형과 패널을 통해 이러한 선박의 구조적 차이와 항해 특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진=중국 지역별 선박 모형]

[사진=고대 선박의 폐기 구멍]

고대 항해의 나침반은 도자기완?

배 주변에는 항해에 사용되었던 닻줄, 물병, 술병 등 여러 가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도자기로 만든 나침반이 관람객의 이목을 끈다. 이와 관련해서, 바닷길로 고려를 방문했던 북송 사신 쉬징(徐兢)이 남긴 기록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오직 별만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갔다. 날이 어두운 경우엔 바늘을 물에 띄워 남북을 헤아렸다(<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丽图经)> 34권, 해도(海道) 1, 반양초(半洋焦): 惟视星斗前迈, 若晦冥, 则用指南浮针, 以揆南北)”고 적었다. 이때 사용된 나침반은 전시된 ‘왕(王)’자가 새겨진 도자기 완과 같은 것으로, 물을 채운 도자완에 바늘을 띄우면 지구 자기장에 따라 남북을 가리키게 되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항해에 필수적이었으며, 오늘날 나침반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사진=나침반으로 쓰인 도자기 완]

화동 지역의 도자 집산지

박물관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전시는 판촌징(樊村泾) 유적에서 출토된 도자기다. 약 150 톤의 발굴품은 모두 사용 흔적이 없어 당대의 상품으로 볼 수 있다. 발굴 당시 너무 많은 도자기가 출토되어 저울로 무게를 달며 정리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전시된 도자기들은 고고학자들이 수많은 조각들 사이에 짝을 맞춰가며 복원한 결과물이다. 끝내 찾지 못한 몇몇 조각들은 석고로 대신했지만 그럼에도 도자기의 원형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학자들은 타이창이 곡식 저장 창고로 기능했을 뿐만 아니라, 수로를 통한 물품 운송의 이점으로 인해 도자기 유통의 중요한 거점 역할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복원된 도자 화분]

전시장을 나서며

타이창 박물관은 규모가 크지 않은 시립 박물관으로, 약 2 시간이면 모든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만큼 아담하다. 하지만 발굴된 유물 하나하나를 보며 그 시대의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는 그 이상이다. 예약 없이 상하이 교외로 간편하게 떠날 수 있는 고고학 여행지로, 역사와 문화를 가까이서 체험하고 싶다면 떠나볼 만한 훌륭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주소: 江苏省太仓市上海东路 100 号
•예약: 별도 예약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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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푸단대에서 고고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방문학자를 지냈으며, 한국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회, 유럽고고학회, 케임브리지-바로셀로나자치대 학회 등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졸업 후 푸단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한중 도자교류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gowoon_seong@fudan.edu.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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