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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화가 바스맷 레빈 Basmat Levin

[2013-04-08, 15:37:19] 상하이저널
[Whu’s Interview]
“내면을 짐작할 수 없는 어느 한 순간을 그린다”
 
뉴욕-상하이를 오가며 작업하는 중동 화가 바스맷 레빈 Basmat Levin

 
Basmat Levin
Basmat Levin
 
예술가는 발언하는 사람이다. 온몸으로 세상의 표면과 마찰하며 얻어낸 비밀을 다른 누구와도 다른 그만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다. 세상의 작은 틈을 발견하는 행운은 환희의 목소리로 나오고, 세상과 비비며 생긴 상처는 비명으로 나오기도 한다.
 
환희든 비명이든 예술가의 말은 세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깨어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중에서 화가는 이미지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영화나 사진도 비슷한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만 화가는 이미지 언어의 원주인이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뉴욕과 아시아를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 바스맷 레빈 Basmat Levin은 주로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화가이다.
 
우리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6년쯤 전에 그녀의 작업실은 골방을 닮았었다. 작았고 어두웠다. 사방 벽이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녀의 포트레이트 작품들이었다.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묘했다. 그때 나는 그녀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사람 앞에 카메라를 세워 두고 수 초 또는 수 십 초 동안 사진을 찍는다면 표정의 미묘한 변화들로 인해 사진의 결과물은 모호한 인상만 남는다. 이 때 드러나는 사진 속 표정이란 속이 비어있는 모호함이 아니다. 순간마다 변하는 표정들이 중첩된 얼굴이다. 중국 작가들 중에서도 모호한 표정의 포트레이트를 주제로 삼아 작업하는 화가들이 있지만, 그들의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모호함이란 일말의 불안과 혼란, 정의되지 않은 모호함이다. 바스맷의 그림이 주는 인상은 그것과 조금 다른데,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인물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표정은 하나의 단어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녀의 새작업실 莫干山路 50号 4栋 2층
그녀의 새작업실 莫干山路 50号 4栋 2층
 
 
 
"6년만의 만남, 그녀의 그림 어떻게 변했을까"
 
곧 상하이를 떠난다고 말했던 그녀를 얼마 전 전시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오, 상하이에 있네요? 네, 얼마 전에 왔어요. 6년 만이다. 그 사이에 나는 그녀의 그림을 화이하이루(淮海路)에 있는 던힐의 매장 복도며 계단에서 보았었고, 그 사이에 나는 작업실을 옮겼고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다.
 
그 사이에 그녀의 그림은 어떻게 변했을까? 인터뷰는 모간산루(莫干山路 50号 4栋 2층) 그녀의 새 작업실에서 했다. 새로 구한 작업실은 그때보다 네모 반듯하고 창문이 더 크다. 창문 너머로 강이 보인다. 창문 유리 한 장에는 수줍은 풀잎을 그렸다. 인부들이 작업실 인테리어 공사 중에 유리 한 장을 깬 것인데 갈아 넣어 주질 않아서 유리의 깨진 선을 따라 풀잎을 그려 넣었다. 중국다운 마무리이고 화가다운 수습책이다.
 
작업실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인물화와 조금 다른 인물화, 그리고 생뚱맞은 패턴 작업들이 가득하다. 6년이나 지났지만 바스맷의 인물화 속에서 표정을 읽어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여러 감정과 여러 순간이 섞인 표정이다. 맞다. 한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표정은 없다. 하나의 감정만으로 채워진 얼굴 같은 건 없는데, 문자언어는 어떻게든 표정을 압축하려 든다.
 
웃음 속에 깃든 허무함이나 슬픔 뒤에 숨어 있는 안도감 같은 것은 웃는다, 슬프다 따위의 단어 하나에 담기 어렵다. 감정은 언제나 단어에 차고 넘친다. 하나의 얼굴 위에 웃음이 피고 그 위에 슬픔이 피고 다시 허탈함과 비참함을 덧칠하는 날들이 반복되면서 당신의 얼굴이 만들어 진다. 흐릿한 윤곽선의 인물 속에서 기쁜 날의 나는 웃음을 보고 아픈 날의 나는 그늘을 보거나 아무 것도 못 본다. 바스맷의 인물화는 이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고, 그래서 나는 그의 작업이 좋다. 굵은 붓터치나 인상적인 색감은 다음 문제다.
 
 
 
 
M_ 오랜만이에요. 다시 왔군요? 작업실이 좋아요. 빛도 좋고, 아늑하군요.

B_ 아시아에서 떠난다는 건 참 힘들어요.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는 말이죠. 내가 나고 자란 중동과 많이 다르잖아요. 사람들은 고요하고 차분하지요. 글쎄요, 남편의 일이 또 어떻게 되는냐에 따라 얼마나 더 머물지가 결정되긴 하지만, 가능한 이번에는 좀 오래 머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 작업실도 참 마음에 들거든요. 여기 들어와서 가만 앉아 음악을 듣고 붓질을 하고 또 커피를 마시는 게 좋아요. 철저하게 고립된 온전한 나만의 세상이죠. 여기 있을 때, 참 행복해요.
 
"서구화되는 상하이, 내게는 익숙한 느낌"
 
M_ 당신의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여전히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인물에 배경이 들어가기 시작하네요. 그리고 배경만 따로 패턴으로 작업한 것들도 있군요. 당신의 인물화와 패턴화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가요? 그리고 몇 년만에 다시 왔는데, 상하이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던가요?

B_ 아, 연관성이라…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하하. 특별히 어떤 계획을 잡아두고 작업하진 않아요. 한참동안 얼굴을 그렸으니까 좀 다른 걸 그려보려고요. 패턴 작업은 최근에 새로 시작했는데, 벽의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벽 하나가 패턴으로 가득 채워지는 거죠. 한 점의 그림으로 온전한 게 아니라, 집 안을 채운 그림, 벽을 채운 패턴처럼 여러 것들이 모여서 한 공간을 완성하는 장면을 상상해요.
 
지금 그리는 패턴 작업은 그런 상상 속에서 한 벽면을 채우는 거죠. 색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부분에 어떤 색을 쓰겠다고 미리 작정하지 않아요. 그냥, 팔레트에 부어놓은 물감 중에 눈앞으로 튀어오르는 녀석들이 있어요. 말을 걸어오는 녀석도 있죠. 그럼 그 녀석이 캔버스를 채우는 거에요. 심플하죠? 중국 친구들 중에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단순한 부분을 보는 것 같아요. 자유롭고 거칠고 소란스러운 선들이죠.
 
 
 
변화라… 상하이 사람들이 몇 년 사이에 변한 것 같지는 않아요. 대신 상하이가 변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네요. 점점 더 서구화되어가고, 그만큼 내게는 익숙한 느낌들로 변하네요. 당신은 어때요? 상하이에 오래 살았잖아요. 상하이의 변화는 좋은 쪽인가요? 나쁜 쪽인가요?

M_ 글쎄요. 좋은 변화나 나쁜 변화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변하는 거죠.

B_ 그렇죠. 변한다는 것만이 진리죠.
 
"얼굴 속 드라마, 느낌이 오는 얼굴, 그거면 된다"
 
M_ 얼굴에 대해 이야기할까요? 사진 작업을 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좋은 모델은 다양한 층의 표정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에요. 깊이가 얕은 표정은 꼭 거짓말 같거든요. 하나의 단어로 설명되는 표정은 오래 보고 싶은 매력이 없어요. 무언가 말로 할 수 없는, 단어로 담을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한 순간에 겹쳐놓은 표정, 그런 표정을 가진 사람이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을 해요. 어떤가요? 인물화를 그리는 입장에서, 어떤 기준으로 모델을 고르나요?

B_ 어떤 다른 기준도 두지 않아요. 그 사람의 직업이나 배경 같은 건 전혀 묻지도 않죠. 난 오로지 그 얼굴에 담겨 있는 이야기, 드라마만 봐요. 알잖아요? 느낌이 오는 얼굴. 그거면 돼요. 그런 사람을 찾은 다음에는 무표정한 순간을 잡아서 그림으로 그려요. 한참 동안이나 계속 웃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무표정한 것만 남겠죠? 하하, 농담이에요. 일부러 그런 순간을 포착해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순간, 그 내면을 짐작할 수 없는 어느 한 순간을 그리려고 해요. 그게 내가 의도하는 것과 가장 어울리는 표정이에요.

M_ 부러워요. 상업 포트레이트에서는 가끔 없는 무게감도 과장해서 만들어야 할 때도 있거든요. 인물의 얼굴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배경으로 인물을 드러내는 과정은, 글쎄요. 이 사진을 보게 될 사람들에게 약간은 실례라는 생각도 들죠.
 
 
 
인터뷰는 시작도 끝도 없이 오후의 한담처럼 끝났다. 이제 사진을 찍을 차례. 그림 속 인물들이 사방으로 둘러싸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컨셉을 설명했더니 이리저리 그림을 가져다 거느라 분주하다. 좀 더 앞서 보여주고 싶은 얼굴, 가리고 싶은 얼굴, 드러내고 싶은 벽이 다 다른 모양이다. 컨셉과 현장의 적당한 균형점에서 사진은 타협했다. 사진 몇 장을 넘겨보던 바스맷은 자신의 표정이 맘에 안 든다고 했다.
 
바스맷, 어떤 표정의 당신이 가장 당신답다고 생각해요? 웃는 표정이요. 난 내가 웃을 때가 좋아요. 너무 심각한 저 표정들은 별로 맘에 안 드네요. 절대 당신 탓은 아니에요. 난 그냥 내 표정이 맘에 안 든다고요. 하하. 하지만 당신은 사람들의 무표정을 그리잖아요? 오, 상관 없어요. 여자는 언제든 예쁘게 보이길 원해요! 알겠어요. 그래도 최종 결정은 내가 해요. 혹시 맘에 안 드는 표정을 골라도 나중에 나를 원망하지는 말아요.
 
우리는 6년이 지난 약속에 대해 말했다. 그 작은 작업실에서 우리는 공동작업을 해보자고 말했었다. 마음에 드는 모델을 구하면 너는 그리고 나는 찍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 보자고 했었다. 바스맷은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제안에 대한 반응은 6년 전과 똑같았다.
 
와, 놀라운 제안이네요. 그래요, 꼭 해 봐요.
 
▷사진•글: Mark Ban

Mark Ban
사진 작업 공간 Space Whu와 사진커뮤니티 fshanghai를 꾸리고 있다.
forgogh@gmail.com
www.spacewhu.net
www.fshangh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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