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항일투사 33인-2]
국어사전 편찬 일등공신 한징
한징(韓澄, 1887∼1944) 선생은 1887년 2월 24일 서울 남부 죽동에서 탄생하였다. 한징의 호는 효창(曉蒼)이다. 1893년에서 1921년까지 한학과 국학을 전공하였다. 그 덕분에 사서삼경에 정통했다. 아울러 우리말글 연구에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1922년부터 1935년까지 <시대일보>•<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강압정치를 비판하였다. 1923년 민족종교인 대종교에 입교했다.
1929년에서 1932년까지 이윤재(李允宰)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의 편찬위원으로 활동했고, 1931년 조선어학회가 조직된 뒤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후 조선어학회가 추진한 표준어의 제정과 우리말사전의 편찬에 헌신했다. 즉 1935년에 조선어 표준어사정위원회에서 사정위원으로, 1936년에서 1942년 9월까지 조선어대사전 편찬의 전임위원으로 활약했다.
한편 한징은 문세영이 단독으로 조선어사전을 만들 때, 사전 원고의 교정을 책임지고 마무리하여 주었다. 조선어학회에서 사전 편찬의 전임위원으로 활동하던 이윤재도 문세영의 사전 편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윤재는 문세영 사전의 체계에서부터 교정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지도하여 주었다. 이렇게 한징과 이윤재의 도움을 받아, 문세영은 최초로 제대로 된 우리말 사전인 <조선어사전 1938>이 발간됐다.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던 조선어대사전 편찬 시기에 한징은 동지들에게 “말과 글은 민족정신의 가장 중요한 소산인 동시에 민족정신이 거기에 깃들이는 둥주리다. 민족 문화의 창조 계승 발전은 그 말과 글의 의지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제 말기 조선어학회 사무실에서 사전편찬원들끼리 일제가 기념을 못하게 한 한글날 행사를 몰래 하면서, 그는 “원고를 속히 마치도록 합시다. 그래서 큰 사전을 하루 빨리 활자화하여 얼론 세상에 퍼뜨리어야지, 까딱했다가는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우려가 있어. 왜놈들 하는 짓이 날로 수상해”라 한 일화가 전해진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묘소는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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