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유광종] 바둑으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대국(對局)이다. 지모와 계략이 맞부딪쳐 승부를 가르는 자리라서 '국(局)'이라는 말을 쓴다. 중국에서는 밥자리도 이러한 '국'의 대접을 받는다. 이른바 '반국(飯局)'이다. 초(楚)의 패왕 항우(項羽)가 한(漢) 고조 유방(劉邦)의 목숨을 노렸던 유명한 밥자리는 홍문연(鴻門宴)이다. 송(宋) 태조 조광윤(趙匡胤)이 송을 건국한 직후 휘하 장수를 모아 놓고 술 한잔 마시면서 "요새 자네들 때문에 잠이 잘 안 온다"고 위협함으로써 병권을 모두 빼앗은 곳도 밥자리에서다.
중국에서는 이렇듯 예부터 밥자리가 상대방을 탐색하거나, 금력과 권력이 서로 교환되는 장소로 흔히 사용된다. 따라서 모든 격식과 호화로움이 자연스럽게 따른다.요즘 중국에서는 이 같은 밥자리의 사치와 낭비에 대해 질책이 뜨겁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경보(鏡報)는 최신호에서 "음식점의 소비량이 올해 1조 위안(약 120조원)을 넘어설 예정"이라며 "이제는 본격적으로 밥자리의 낭비를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北京) 시내를 바깥으로 감싸는 3환(環) 도로에 위치한 한 고급 음식점에서 작은 방을 빌려 식사를 하면 3000위안(36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방값을 따로 받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적게 먹어도 이 가격만큼은 지불해야 한다.
차림표에는 전복 1인분에 688위안(약 8만2500원), 샥스핀 1인분은 480위안(5만76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제대로 손님을 대접하려면 일본산 전복을 들여야 하는데 한 마리 가격이 6800위안(81만6000원)이다.한 상에 4900만원짜리 호화 메뉴가 등장한 것은 2002년이다. 여론의 질타로 이 메뉴는 바로 사라졌지만 이에 버금가는 밥자리는 중국 전역에 즐비하다. 16만 위안(1920만원)짜리 '백두산 산삼계탕(鷄湯)'이 등장하고, 50g에 10만 위안(1200만원)짜리 차(茶)가 나온다.
경보를 비롯한 중국 언론들은 "중국인은 밥자리를 통해 각종의 이해관계를 만들고 심지어 금력과 권력을 맞바꾸면서 점점 더 호화와 낭비 풍조가 극치를 향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