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사는 친구와 모처럼 차를 마시며 한가한 오후를 보내다가 이런 저런 얘기 중에 어릴 적 이야기를 하게 됐다. 나이도 비슷한 연배고 게다가 지역은 달라도 시골에서 자란 공통점이 있어서 인지 추억도 비슷했고 그러다보니 이야기 거리가 끝없이 쏟아졌다.
어린 시절 조그만 돌들을 모아 공기놀이를 하고 다음날을 위해 손톱에 까맣게 때가 끼도록 땅을 파서 묻어 감추었던 일, 땅따먹기와 핀따먹기로 욕심을 부리던 일, 치마를 펄럭이며 고무줄 놀이를 하다가도 남자아이들의 고무줄을 끊는 짖궂음에 참지 못하고 쫓아가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던 일…. 정말이지 우리의 이야기는 조금의 지루함도 없이 즐거웠고 그 순간 마치 어린 아이가 된 착각에 빠지게 했던 행복한 하루였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부쩍 어릴적 친구들이 그립다. 도시의 아이들이야 이런저런 이유로 이동이 잦겠지만 나에게 청소년기란 추억 그 자체이다. 모두들 같은 생각인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으로 사회로 각자의 길로 바쁘게 살아가던 친구들이 요즘 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의 꽃 같은 시절을 찾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을 통해 고등학교 카페를 찾는 친구들이 부쩍 늘고 우리는 비록 사이버 에서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한모습을 보고 놀라워하기도 하고 또 “넌 정말 예전 그대로 구나”하며 기분 좋은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동창모임을 하다 보니 반가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지만 또 남녀공학 이었던 이유때문일까. 첫사랑을 만나는 일도 있게 되었다. 마치 소녀로 돌아간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몇몇 친구들이 다시 만나 반가운 이상의 감정들을 느낀다는 소식에는 당황스럽기조차 했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친구가 곧 수술을 해야 하는데 친구들이 함께 가서 기도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독실한 신자인 친구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친구 ㅇㅇ커플이 주선하는 거라고, 그래서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난 대뜸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잠시 빗나간 감정들이 순수한 추억마저 망설이게 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까 노파심이 들었다.
청소년기하면 누구나 사랑의 몸살을 한번쯤은 앓아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름 심각했든, 잠깐 스쳐갔든, 아니면 짝사랑 이었든…. 하지만 어떠한 것이든 추억은 추억으로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가끔 지칠 때 삶에 활력소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변해가고 그러면서 많은 가치관들도 변해간다. 모두들 세월의 흐름 속에 몸은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지만 가끔 지나친 감정의 충실함(?)과 절제하지 못하는 성숙되지 못한 모습에서 나를 바라보고 또 우리 아이들을 바라본다.
가장 순수하던 그 시절의 추억은 다시 반복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바르게 살아 왔다고 자신해도 그때 그모습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얼마나 예쁘고 고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줄을 알까? 그러면서 난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이야 있겠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곱게 간직하길,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도 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갖는 부자로 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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