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으로 고구마 찌고 마실 보리차 끓이고 애들 학교에 가져갈 간식이랑 준비물 챙겨주고, 이제 아침 국이랑 저녁 반찬만 하면 되는 구나~’
딱 15일!
정해진 15일이란 시간 동안 ‘출퇴근이란 이름’의 외출을 했다. 매일 아침 8시 20분에 둘째 유치원 스쿨버스를 태워주고 출근을 했다가 저녁 6시가 되면 퇴근을 해 집으로 왔다. 미리 집안일과 소소한 일들을 미리 챙기고 일주일 밑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와 냉동고에 넣고도 마음이 안 놓여 15일의 출퇴근을 위해 안쓰던 아이(阿姨)도 쓰며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챙겨 달라고, 엄마 없이도 간식과 저녁을 잘 먹을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10년 동안 ‘아줌마, 누구 엄마, 누구의 아내’였다가 내 이름이 쓰인 명찰을 가슴에 달고 깨끗하고 단정하게 다림질한 내 옷을 입고 매일 구두와 핸드백을 정리하는 즐거움도 잠시! 10년 만에 해보는 출퇴근이 주는 천지창조 같은 설렘은 딱 6일간이었다.
퇴근 후에 아이들이 제대로 먹었는지를 확인하고 바쁘게 남편 저녁을 차리고 깜박 졸았다가 안 떠지는 눈을 간신히 떠보면 마스카라가 번져 판다 눈이 되어 있다. 침대에 던져져 구겨진 옷처럼 자는 내 옆에, 비 맞은 강아지마냥 품을 파고들며 잠든 두 아이를 보니 15일이 아니고 매일 출퇴근하게 되면 어찌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올 풀린 스타킹을 새로 사러 갈 시간도, 새로 나온 봄나물을 사러 갈 시간도 없다. 퇴근과 동시에 집에 와 아이(阿姨)와 교대를 해야 했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손톱이 일어나 쓰리고 아팠지만 집에 오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숨어있던 흰머리도 바람에 날리고 있지만 꾸미고 챙길 여유는 없다.
‘15일 동안’엔 둘째의 생일도 있었고 남편의 출장도 있었고 완연한 봄이라고 신나서 준비했던 꽃 화분도 돌봐야 했고 미뤄뒀던 겨울 옷을 정리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둘째의 생일은 아이가 아파 나흘간 병원에 링거를 맞게 되면서 미역국도 못 먹고 5살 생일을 맞았다. 그런 둘째를 챙기며 병원수발을 하는 건 남편 몫이었다.
민폐 마누라가 된 게 미안해 앓는 아이를 달래며 딱 하룻밤을 설쳤는데 몸살이 왔다. ‘이 눔의 약은 내가 먹을 라고 찾음 없어’ 짜증이 있는 대로 났다. 서랍 귀퉁이에 포장지도 반쯤 벗겨진 약을 챙겨먹고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이들과 남편이 먹은 저녁 메뉴는 양념통닭. 이후로 차곡차곡 쌓이는 양념통닭집 쿠폰과 짜장면 집 나무젓가락, 그리고 텅 비어가는 냉장고가 나의 현실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되고 싶었던 나는 곧 제자리로 돌아간다. 출근용 가방을 든 손엔 시장용 까만 비닐봉지가 함께 쥐어져야 하고 실크셔츠를 입고도 김치를 잘라 상을 차려야 하는 현실을 실감했던 15일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이들을 다시 부러워하겠지. 이 세상의 모든 워킹맘에게 응원을 보내며 15일간의 고단했던 외출이야기 끝.
▷Betty(fish7173. 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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