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은 프랑스화가 밀레가 사망한 날이다. 밀레 하면 여러가지 유명한 그림들이 있지만 그 중 '만종' 은 나에게 깊은 인상이 있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시골 우리집 방문 위에 걸려있던 낡은 액자 속의 그림 그것이 밀레의 '만종'이란 것을 알았을 때는 한참을 지나서였다. 작은 방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한눈에 들어오는 평화로운 풍경이 가끔씩 불끈거리는 내 사춘기의 혈기를 누르기도 했고 때로는 그림 속의 농부 부부처럼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폭의 낡고 유일했던 그림은 내가 커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걸려 있었고 나도 모르게 내 심연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중국으로 오게 됐을 때 낯선 곳에서 무료함을 위해 아주 커다란 십자수를 준비했는데 그때 내가 선택한 그림이 '만종'이었던 것도 그때의 그 추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종'이 완성될 때까지 몇 년이 걸렸다. 아무리 좋아한다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눈이 시려 오랫동안 할 수 없었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그림을 보며 빨리 액자를 만들어 걸어두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
넓은 들에서 농부 부부가 멀리 교회 종소리를 듣고 잠시 일을 멈추고 두 손을 모으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소박한 모습으로 보인 농부의 옆에 놓인 바구니가 사실은 가난 때문에 죽은 아기의 시신이 담겨있고 두 부부는 수확의 기쁨이 아닌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는 사연을 알게 됐을 때 가난한 농민의 이런 가슴 아픈 삶을 헤아린 밀레의 작품에 더 애착이 갔다. 친구의 권유로 감자바구니로 바뀌긴 했지만 밀레는 농촌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이렇게 농촌생활과 자연을 주재로 많은 그림을 남겼고 고흐나 쇠라 같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다.
지난주 마침 이곳에서 밀레전이 있다기에 남편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은 그다지 없지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밀레의 진품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8호선 '중화예술관역'에서 내려 나오니 지난 엑스포때 몇 시간 줄을 섰던 안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곳 중국관에서 밀레전을 했는데 유명세만큼이나 경호원들이 3, 4작품마다 한 사람씩 서있었다. 100여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명화도 명곡만큼이나 질리지 않고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품위가 있는 것 같다. 밀레의 농촌 풍경과 농민의 삶이 진솔하게 묘사되어있고 특히나 많은 작품 속의 지평선들은 또 다른 밀레의 작품세계를 보는 것 같다.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던 것은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만종'이 없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사진이 아닌 밀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감동이었다. 그날은 마침 연우도 학교에 가지 않아 우리와 함께 갔는데 겨우 발걸음을 띠던 조그마한 아이가 어느새 10살이 되어 우리 손을 잡고 작품을 보며 이것은 교과서에 나온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작은 손으로 무엇을 적는지 메모를 하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가 않다. 너에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이 쌓여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무엇이든지 그것에 혼을 담아 쏟는다면 세월을 뛰어넘어 함께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그림, 글, 연주 아님 짧은 시 한편이든…. 그날 우리 서로 다른 세 사람이 함께 밀레의 명화를 감상하며 서로 다른 감동 이었겠지만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직도 그림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은 하나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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