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선 거의 이틀에 한번씩 알러지약을 복용하고 있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30대 중반경에 생각지도 못했던 햇빛 알러지가 생기더니, 요즘엔 피부가 더 건조해지고 있는 건지, 다른 약의 부작용으로 생긴 것인지, 조금이라도 예민해지고 신경써야 할 일이 생기면 몸이 먼저 반응을 보인다. 스멀 스멀거리며 가려움증이 시작된다. 그리고 가렵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약을 제 때에 먹지 않고 괜히 버티고 참았나 후회하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뜨거운 햇살에 과민 반응을 일으켜서 썬블럭 크림을 듬뿍 듬뿍 발라대기 시작한지가 벌써 10여 년이 지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번 면역력이 떨어진 몸은 회복의 기미가 전혀 안보이고 있다. 오히려 또 다른 알러지만을 유발시키고 있을 뿐이다. “우리 집 냉장고위엔 홍삼이 천지네! 저걸 언제 다 먹을 거냐?”고 아이들이 말하고 있다. 면역력을 키워준다며 남편이 사다 나르고 있는 것들이다. 어쩌다 ‘건강이 최고지! 챙겨 먹어야겠다!’하면서 한 봉씩 뜯어 마셔본다.
얼마 전, 태국여행길에서 만난 한 한의사말씀이 폐기능이 약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에 가려움증이 생길 확률이 크다 했다. 거의 모든 병은 예외없이 유전이 된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그러신다. 젊어서 폐가 안좋으셔서 군복무를 다 끝내시지도 못했었고, 젊은 시절부터 담배는 손에 대시지도 않으셨다. 그럼에도 지금 가려움증으로 고생하고 계신다.
아버지 닮아서 나도 가려움증 알러지가 생긴 것 같다고 투정을 부려봤다. 언성을 높이셨다. 당신의 유전자를 분명 내가 물려받았음에도 나쁜 유전자를 물려 준 게 미안하신지, 아님 정말로 유전이라는 단어를 부정하고픈 마음이 더 크신 건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화를 내셨다. 별걸 다 유전 탓으로 돌린다고 오히려 면박만 잔뜩 주셨다.
작은 아이가 어렸을 때 아토피가 있어서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책에서 임신초기에 먹은 계란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글 귀를 봤을 때, 시어머니가 아들 낳으려면 삶은 계란 3개를 한자리에서 먹어야 한다고 내밀었던 것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가슴을 툭~ 툭~ 손으로 쳐가면서도 구역구역 넘겼던 기억에 나 자신의 미련함이 이 아이에게 이 가려움증을 준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가려워서 긁어달라 할 때면 미안한 마음에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자라면서 많이 좋아지고는 있다. 이 아이가 나중에 엄마 유전자 때문에 자신의 피부에 문제가 있다고 농담을 흘린다 해도 난 변명할 말을 못 찾아 낼 것이다. 좋은 유전자를 남겨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피부가려움증과 같은 알러지가 많이 생긴다고들 한다. 이것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도 같다. 뭔가 해야 할 일을 제때에 못해내고 있을 때, 원하는 바대로 일이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을 때면 몸 속에서 그럴 줄 알았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즉각 반응을 보내기 시작하는 게 확실하다.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라. 애들 일은 걔네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내버려둬라….
오늘도 여지없이 알러지에 지고 말았다. 약을 먹은 휴유증에 정신이 조금은 몽롱하긴 해도 직접적인 가려움은 가라앉았다. 약이 좋긴 좋구나, 이 약이 아니라면 밤새도록 온 몸을 긁어대느라 한 숨도 못 자고, 또 내일은 어떻게 맞이 할 지가 막막 했을 텐데, 이 자그마한 한 알의 약이 오늘은 틀림없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된다. 오늘의 한 알이 내년엔 두 알이 되어있지나 않을까 하고…. 의사도 경고했다. 약은 적게 먹을수록 좋은 거라고, 이 것만큼은 꼭 기억해두라고 했다. 이 고질병은 내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당분간은 내게 꼭 붙어 있을 것 같다. 끈적~ 끈적~ 그러나 나의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 알러지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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