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제국주의 역사 바로알기]
①야스쿠니 신사참배
②욱일승천기-바로알고 바로잡자
③일본의 추악한 과거- 731부대
④남경대학살
⑤독립을 빛낸 숨겨진 영웅들
얼마 전 그릇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연예인의 말 한마디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신사참배의 신사가 젠틀맨 아닌가요’라던 청소년의 발언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역사·문화의식 수준에 대한 우려가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8·15광복절을 맞이해 우리가 잊어버리고 혼동하기 쉬운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를 바로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일본 과거 부인의 유물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인해 한국과 중국 등이 떠들썩 한 바가 있다. 신사(神社)란 일본 황실의 조상이나 신대의 신 또는 국가에 큰 공이 있는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으로 일본 고유 신앙인 신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사참배는 예전부터 한국인에게는 민감한 주제였는데 이는 일본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한국인에게까지 신사참배와 신도신앙을 강요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총독부의 장려하에 1945년까지 조선에는 천여 곳에 신사가 세워졌고, 각 가정에는 가정 신단까지 만들어 아침마다 참배하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신사참배에 동원된 인원은 1942년엔 약 264만여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격렬한 신사참배 거부운동이 일어났고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신사참배 강요 금지 청원운동’, ‘신사참배 거부 권유운동’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 아래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른 사람은 2천 명에 이르고 2백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순교자도 50여 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반감 때문에 8월 15일 광복이 되자마자 대부분의 신사가 15~16일에 방화 파괴되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는 1869년에 세워진 원래 이름인 쇼콘사에서 야스쿠니(평화로운 나라)라는 역설적인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일본 전역에서 가장 큰 신사이다. 일본의 대외침략과 발맞추어 국가신도의 국가적 성격을 비추는 신사로 자리 잡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모든 전몰자는 생전의 잘잘못은 상관없이 신으로 모셔 국민의 예배를 받게 해, 천황숭배와 군국주의를 고무시키는데 기여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러일사변, 제2차 세계대전 등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죽은 246만 여명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데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고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최초로 총리 자격으로 공식참배를 함으로써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참배가 문제 되는 이유는 이곳에 수많은 전범들이 안치되어있고 이에 참배함으로써 일본의 침략과 전쟁행위를 미화하고 이에 관한 책임을 모두 부인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총 다섯 번 참배하였고 올해 일본 국회의원 168명, 아베 총리 각료 3명이 참배함에 따라 한일 및 중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대형 함포 등 각종 병기, 가미카제 돌격대원의 동상, 특대형 포탄, 군마와 군견의 위령탑, 전투기 등 수많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유물과 전범의 동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평화로운 나라’를 뜻하는 야스쿠니라는 이름과 야스쿠니신사의 상징인 흰 비둘기와 대조되게 신사 내부는 전쟁과 전투를 의미하는 유물과 동상으로 가득 차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대한민국의 광복 및 일본의 전쟁 패배 68주년이 되는 올해까지도 지난날의 악행을 부인하는 일본의 이중성의 축도라고 볼 수 있다.
▷고등부 학생기자 이규민(SSIS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