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점수 발표, 대학입학 예상최저점수 함께 나와
중국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가 지난주 주말 끝이 났다. 대륙의 수능은 스케일부터 남다르다. 지난 7, 8일 이틀 통안 치러진 가오카오에는 천만명에 가까운 939만명의 수험생이 응시했다. 한국 수험생이 6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16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대부분 한자녀 가정인 중국은 교육열이 높은 데다 가오카오 성적만으로 대입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가오카오 기간에는 전국적으로 입시 홍역을 치른다. 시험 당일 시험장 주변에서는 테러 등 불상사에 대비해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으며, 핸드폰 등을 이용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검색봉으로 수험생들의 몸 수색을 하기도 했다.
중국교육재선(中国教育在线)의 발표에 따르면 각 지역의 수능시험성적은 시험으로부터 3주가 지난 오는 28일(토) 오후 8시에 전국적으로 발표된다. 점수 발표와 함께 각 대학입학 예상 최저점수선까지 함께 공표될 예정이다. 상하이 지역은 올해 가오카오에 5만 2000여명이 응시했으며 상하이의 대학들 신입생 모집 예상인원은 4만 3000여명으로 응시생의 약 80%에 다다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오카오 시험장 풍경](http://www.shanghaibang.com/webdata/aacn02/news/201406/20140612104011_b2fc1000.jpg) |
가오카오 시험장 풍경 |
한편 지난 6일, 중국 기관지 인민망(人民网)은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의 대학 입학스토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시진핑(习近平) 국가주석은 문화대혁명 기간인 1975년 ‘공농병(工农兵•노동자 농민 군인) 특례제도’를 통해 추천을 받아 명문 칭화대(清华大) 화공과에 입학했다. 혁명원로인 부친 시중쉰(习仲勋) 전 부총리가 ‘반당’ 사건에 연루됐던 게 그가 칭화대에 입학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을 초래했다.
시진핑은 문화혁명 때 집이 몰수되는 등 고초를 겪다 1969년 하방(下放)돼 6년 동안 산시(陝西)성 옌촨(延川)현 량자허(梁家河)에서 소위 ‘지식청년’으로 일했다. 칭화대 추천 입학 과정에서는 현(县) 교육국 간부가 그를 적극 지원했지만 정작 칭화대 입학관리 담당자는 부담스러워했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부친이 일하던 공장의 간부가 증명서까지 써준 끝에 어렵게 입학할 수 있었다.
1955년 출생으로 상무위원 7명 가운데 가장 젊은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1977년 가오카오를 통해 대학에 입학한 케이스다. 상무위원 중 유일하다. 바로 그해에 문화혁명 동안 중단됐던 대학 입시가 부활됐다.
수재형인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감안해 베이징대는 2지망, 1지망으로는 학비가 지원되는 안후이(安徽)성 한 사범대학을 적었다. 그러나 학생 우선선발권이 있는 베이징대는 우수한 그를 뽑았다. 입학 당시에는 ‘정법전공’이었으나 뒤에 법학과로 바뀌었다.
장더장(张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은 1978∼1980년까지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했고 위정성(兪正聲)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하얼빈 군사공정대학에서 미사일 탄도제어 시스템을 전공했다.
▷손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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