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연합뉴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 본래 이름은 武則天)의 건릉(乾陵) 발굴을 둘러싸고 중국 고고학계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산시(陝西)성 당국은 최근 시안에서 '측천무후 1천3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고 건릉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건릉 묘역의 문화재 유적을 탐사하는 계획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건릉은 산시성 시안(西安)에서 서쪽으로 85㎞ 떨어진 첸(乾)현 량산(梁山)에 위치해 있으며 1천300년전 당나라의 여걸이었던 측천무후와 그의 남편인 고종(高宗)이 묻혀 있다.
중국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굴당하지 않은채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황제 능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시성의 계획 발표 직후 지난 40년간 잠복해있던 건릉 발굴에 대한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25일 전했다.
산시성 문화당국이 1960년대 중반 제출한 건릉발굴 계획은 "후세 사람들이 발굴토록 남겨두라"는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지시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1973년 작가이자 역사학자로 측천무후를 재평가하는 역사소설을 썼던 궈모뤄(郭沫若)가 다시 건릉 발굴을 건의했으나 저우 총리는 여전히 "향후 10년안에 건릉을 열어선 안된다"고 못박으며 발굴계획은 한동안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산시성 고고연구소 명예소장인 스싱방(石興邦)은 "건릉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두 황제가 합장돼 있고 지금껏 도굴되지 않은 능묘로 매장된 시신과 금은 장식품, 도기, 목기, 의류 등이 모두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스 소장은 "중국 고고학 전문가와 현대 과학기술로 지금은 발굴이 가능하게 됐다"며 "매장된 대규모 문화재가 지질과 기후의 변화 등으로 파손되거나 손실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상당수 고고학자들의 입장은 현재 기술로는 제대로 발굴작업을 진행해 출토된 문화재를 제대로 보호하기가 부족하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대 고고학과 쑤바이(宿白) 교수는 "세계 고고학계의 통상적인 관점으로는 과학기술 조건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아예 발굴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오히려 1천여년 간의 지하 환경이 훨씬 안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중국 국가문물국은 한 관계자는 건릉을 '능동적으로'으로 발굴하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면서 고고문물을 보호하고 소실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측천무후(624~705)는 후궁 신분에서 고종 황후로 올라갔다 고종 사후 황제로 등극, 16년간 재위했다. 황태후 신분으로 정사를 좌우한 기간까지 합하면 실제 50여년간 집권한 셈이다.
집권기간 잔혹한 살상과 종실 탄압으로 음탕한 여제(女帝)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중국 역사상 인재중용, 측근 단속 등 조치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농경장려 등을 통해 사회 안정과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