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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화성에서 오신 분

[2016-09-07, 14:31:20] 상하이저널

늦은 토요일 오후. 아내는 가족끼리 오붓한 한 끼의 외식을 기대하며, 가족들에게 특별히 오늘 먹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묻는다. 더위에 지쳐서 일까? 가족들은 질문에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남편에게 당신은 뭐 먹고 싶은 것 없냐며 묻는 아내. 남편은 대충 먹지, 하며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윽고 아내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난 오늘 더워서 밥을 못하겠다고 하자 남편은 아, 그래 우리 그럼 나가서 먹자라고 말한다.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낮잠에 빠져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6시가 넘어가는데 계속 잠만 잔다. 깨우기도 미안하고 해서 한숨을 쉬며 아내는 쌀을 씻기 시작한다. 쌀을 씻다가 보니까 짜증이 확 쏟구친다. 날씨는 덥고 매일 먹는 반찬도 물리고, 동네 바닥을 좀 떠나 택시라도 타고 나가 다른 분위기도 좀 느끼고 싶다. 거칠게 그릇 부딪히는 소리에 잠이 깬 남편. 기지개를 펴며 아 피곤해. 아니 왜 밥을 해. 나가먹자면서. 여전히 소파에 누워 말을 던진다. 아내는 짧게 대답한다. ‘됐어’.

 

남편은 그 때 그 ‘됐어’라는 말이 ‘아니야 집에서 밥해 먹자’로 들린다. 그렇게 그냥 저녁은 준비가 어찌어찌 됐다. 뿔이 난 아내는 자기 밥을 차리지 않는다. 남편은 왜 안 먹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저 아내가 ‘다이어트 한다며 간혹 저녁을 안 먹었지.’ 하는 생각에 혼자 배부르게 먹는다. 아이들도 아무 생각 없이 먹는다.


저녁을 다 먹은 식탁. 밥풀 묻은 그릇과 너저분하게 흩어진 반찬 그릇들. 먹기만 하고 자리를 떠난 식탁에 아내는 짜증을 넘어 서러움이 북받쳐, 이내 눈물이 난다. 남편은 당황하며 묻는다. ‘당신 왜 그래’ 그 말에 도무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남편은 분명히 아까 ‘됐어’라고 들었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무려 15년이 넘어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선배님들 조차도 분위기를 파악 못하는 남편들때문에 속상하다는 말을 많이 하신다. 반대로 남편들은 살아도살아도 여자 속을 모르겠다며, 분명히 말은 그렇게 해놓고 왜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며 힘들다고 한다. 나도 가끔 이렇게 오래 같이 살았는데 어쩜 내 마음을 그리 모를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렇다고 콕 집어서 ‘내가 마음이 이래, 그러니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기가 왠지 치사스럽게 느껴져 말을 하려다가 말아버린다. 오래 사귀어온 여자 친구들은 내 표정만 보아도 딱 알아차리는데, 같이 산 남자는 구체적으로 얘길 하지 않는데 어찌 알겠냐며 가슴을 친다. 영화에 나오는 멋진 남자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더구만 왜 현실의 남자는 그렇지 못한 걸까? 가끔 아줌마 모임을 나가면 그런 얘기들이 집마다 비슷비슷한 모양새다.


20여년 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한 10여년 전에는 ‘지도를 보지 않는 여자, 길을 묻지 않는 남자’라는 책도 보았다. 다름을 인정하고 머리로는 알아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서운하고 화나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화성인은 동굴로 들어가고 금성인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서로 분명히 다른 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것은 폭력과도 같다. 면밀히 따져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인데 왜 지혜롭게 풀어내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밀려오고, 이런 책을 접하면서 ‘맞아, 그래서 우리가 다투는구나’ 라고 깨닫고 반성한다.


오래 살면 산만큼 상대방을 잘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은 헛된 희망일까? 결혼 50년이 다 되어가는 부모님이 똑같은 문제로 50여년 똑같이 투닥거리며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간혹 손을 꼭잡은 노부부가 다정하게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보, 저기 봐, 저기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좋은 모습, 너무 보기 좋지 않아? 하면 화성에서 오신 분의 한마디.
“3일 전 소개팅으로 만나신 분들이야”.

 

느릅나무(sunman5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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