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산 게이 | 사이행성 | 2016년 3월
<나쁜 페미니스트>는 한국사회에 미투열풍이 확산되기 전 2016년 출간된 책이다. 각종 언론 출판 서점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저자도 함께 화제가 됐던 책이기도 하다.
저자 록산게이는 아이티계의 이민자의 딸, 흑인여성이다. 미국사회에서 차별적 요소를 두루 갖춘 그녀는 청소년기에 오랫동안 만나왔던 백인 남자친구(?)에게 이끌려 집단 성폭력을 당한 끔찍한 경험이 있다.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으로 일부러 살을 찌웠던 아픈 상처가 있다. 지금은 대학에서 문학교수로, 소설가, 문화 비평가로, 뉴욕타임즈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사회 미투 상황들에 여성이어서가 아닌 자연인으로 분노가 솟구쳤지만, 주변에 설득력있게 설명하려니 나의 페미니즘이 너무 올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페미니스트였어?”
“페미니스트가 왜 그래?”
그럴 때마다 목소리가 작아지며 난 '위드유'하며 지지하는 사람일 뿐, 가해자의 행동에 분노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인간적으로 공감했을 뿐이라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페미니스트는 왠지 이론으로 무장된, 쎈 여자의 것들로 보는 듯해 부담이 됐다. 이때 이 책의 한 줄 한 줄이 내 안의 질문들에 답을 줬다.
페미니즘은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평등’임을 안 순간 페미니즘을 받아 들이는 것은 쉽다고! 핑크를 좋아하고, 외모에 관심을 가져도 자신만의 소신이 있다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페미니즘은 다양할 수 있다고!
저자는 그것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 보다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말해 각 국 매체로부터 유례없는 찬사를 받는다. 대중적 페미니즘 열풍을 일으킨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기울여 보면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여성우월주의의 센 캐릭터 페미니스트가 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성평등한 사회로 만들자는 주장이 왜 센 여자들의 것이고, 성차별은 왜 생존 다음에나 나오는 사소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인지를 생각해보자고….
사실,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면서도 심각한 그녀들, 과격한 움직임으로 취급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독자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은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지만, 개개인의 변화된 행동을 통해서도 성공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복수명사로, 그 안에 다양한 페미니즘이 공존할 수 있으므로 각자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존중해야 한다.”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나도 가볍게 나쁜 페미니스트로 출발해 볼까’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고수미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