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씨!
요즘 점점 게을러지는 나를 되돌아 보며 그녀를 떠올려 본다. 5년 전 그녀와 난 한 반이었다. 이웃집 할머니의 부탁과 권유로 석 달 남짓 다닌 중국어 학원에서 우연히 각자 다른 반에 있다가 같은 반이 되면서 낯선 이방인(?)끼리 짝이 되었다.
수더분한 인상의 그녀는 얼마나 부지런하던지, 공부도 열심히, 아이들 교육도 꼼꼼히,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 살면서 아주 조금 이라도 베풀면서 살아야지 했던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4년 내내 주고 지난해 봄 학기를 마치고 떠났다. 갈 때도, 주위 친구들이며 이웃들에게 깨끗하게 썼던, 정성의 손때가 고스란히 남겨진 물건들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떡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나에게 직접 만든 백설기를 보내기도 하고, “언니! 바쁘지? 반찬 조금 한 것이라 많이도 못 보냈어!” 하며 우리 큰아이가 좋아하는 오징어 채 볶음에 김치까지 챙겨 주던 그녀였다.
올 봄 잠시 다녀갔는데도 또 보고 싶다. 아마도 이 상하이에는 그녀가 뿌린 씨앗들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맘 속에도 자라, 꽃도 피고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지금 다른 하늘 아래서 두 딸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여자로서도 변함없이 열심히 살고 있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본인이 얼마나 햇살과도 같은 사람이었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 사람이었는지를 …….
얼마 전에도 그녀 덕분에 알게 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하이에 오면 같이 만나자고, 미정씨에게서 연락 오면 꼭 알려 달라는. 그렇다. 그분 역시 그녀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처음으로 내가 너무 많이 받았다고 느끼게 해준 사람, 난 너무 준 게 없어서 정말 미안했고, 난 언제 갚을 수 있을까? 하고 자꾸 생각나게 한 사람이다. 그녀는…….
살면서 크고 작은 인연을 맺게 마련이고, 그 안에서 서로 보듬어 주는 관계가 되기도 하고, 때론 서로 작은 상처를 주며 서로 힘들어 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없었을까? 아님 적어도 그 말로 다른 사람들이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삭막해진 세상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 그래도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엄마! 엄마처럼 세상사람 다 믿으면 살기 힘들어요.”라고 말한 딸아이에게, 그리고 봄에 급하게 다녀간 그녀를 두고 아들이 한 말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엄마! 미정이 아줌마는 남 같지 않고, 꼭 이모 같아요.”
“그러게 말이다. 네 말이 꼭 맞는걸!”
언젠가 그녀와 꼭 한번 같이 여행할 그 날을 그려본다. 동생인 그녀가 오히려 언니처럼 내게 소중한 것들을 나눠준 것에 대한 작은 선물이 될 것이기에…….
▷진리앤(truthann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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