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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 문학동네 | 2003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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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La vie devant soi
“다양하고 아름다운 각자의 생이 주어져 있다.”
러시아 출신으로 프랑스에 정착해서 이민자의 삶을 살아온 작가가 중년이 넘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세상에 내놓은 <자기 앞의 생>은 삶의 막바지에서, 이민자로서 살아내야만 했던 처절하고, 비참하기까지 했던 어린 시절의 삶을 회상하며 집필한 작품이다.
프랑스 외곽에서 이민자로서 최하층민의 삶을 사는 주인공 모모와 그 이웃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사랑’이다.
병든 로자 아줌마와 늙은 하밀 할아버지를 지키는 열네 살의 모모. 모모는 곧 자기자신이며, 로자 아줌마는 어린아이랑 단둘이 프랑스남부에 홀로 정착했던 엄마의 모습이다. 두 모자가 귀족사회의 잔상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프랑스 땅에 정착해서 버텨내야만 했던 성장기의 삶을 소설 안에 담아내었다.
-라몽이 내가 말하는 결핍상태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그건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내가 난쟁이가 아닌 것 만도 기뻤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내가 팔다리가 있다는 것 만도 다행이었다.
가난은 예나 지금이나 결핍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민자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팔다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고통과 결핍을 딛고 일어선 14세 소년 에밀아자르.
그러나, 너무 열정이 많아서였던가? 아니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기 때문인가? 어려움을 딛고, 큰 명예까지 차지한 중년의 작가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삶에 대하여 처절하고 깊숙한 심연으로 빠져드는 작가의 섬세한 터치가 있었기에 이토록 훌륭한 명작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완전히 검거나 흰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하밀 할아버지)”
인간의 삶은 늘 결핍과 고통 속에 있다. 삶이란 모순 덩어리이다. 이중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과 물질적, 정신적 결핍이 만연한 고통스러운 삶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는 일이다.
열네 살의 모모는 구질구질한 이민자의 동네에서 살아가지만, 하밀 할아버지와 아줌마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로자 아줌마가 병들자 끝내는 늙고 병든 로자 아줌마의 임종을 지키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살아가며 해야 할 일은 현실에 대한 개인의 욕망을 추앙하기 보다는 더불어 함께하는 사랑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주어지지만 똑같지 살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빵을 쫓아 뛰어다니고, 현실과 타협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을 가꾸어 가며 부피감있는 삶을 구현한다.
어쩌면 평생을 그의 어머니가 요구한데로 목표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작가가, 인생의 막바지에서 삶을 돌아보며 잘못 살아왔다는 아쉬움 속에 참회하며, 순수했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집필한 <고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궁핍함과 짐진채로 내버려두며
고통의 손에 넘겨주는건
땅에서 갚아야 할 모든 죄 때문이라네(괴테)
고달프지만, 때로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각자의 생이 주어져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은 개인의 몫일 것이다.
김혜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