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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온유한 자는

[2010-09-04, 00:35:13] 상하이저널
어느 날 상하이를 떠나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 이미 많은 선배님들이 주신 답이 있는데 바로 안마사와 보모아줌마다! 피곤할 때 손쉽게 찾아 들어 갈 수 있는 안마점이나 주부들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선사해주는 보모들은 정말 상하이 생활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돌이켜보면 그간 만나고 헤어졌던 아줌마들이 추억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속상할 때도 많지만 헤어질 땐 아쉽고 쉬이 잊혀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떠오르는 얼굴들….

지난 겨울엔 2년 반 정도 있던 아줌마 때문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급여도 주변시세보다 높게 주는 등 나름 잘 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높은 월급을 요구해서 나의 사정을 얘기하고 관두게 했더니 그게 섭섭했었나 보다. 갑자기 와서는 큰 소리로 들어보지도 못한 신고비(辛苦费)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법을 어겼으면 당연히 그 값을 치르겠으니 일단 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거실에 앉아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110, 친구들, 소개소 등 여러 군데 전화를 하는데 들어보니 그것을 명시한 고용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뜻에 맞는 답을 얻지 못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구(区) 정부에까지 문의를 했지만 거기서도 같은 답을 듣자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냥하게 미안하다며 가보겠단다. 그간 별다른 갈등 한번 없이 잘 지냈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섭섭함이 너무나 컸지만 한편으론 그 어디서도 자신의 편을 만나지 못하고 실망하던 그녀의 뒷모습에 연민이 느껴졌다.

내게는 돈을 벌기 위해 고향과 자식들을 떠나 온 딱한 사람이기만 하던 그녀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고단한 하루 하루를 감내하는 그네들의 남편들, 일년에 한번 고작 며칠 동안만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아이들…. 법도, 정부도, 이 세상 어디에도 이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어 고통과 억울함을 풀어줄 곳은 없구나,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이틀이 지나 마음이 좀 가라앉은 후 아줌마를 만나 준비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축복하고 다시는 그렇게 감정을 노출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성서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가난과 온유는 한 단어로 히브리어로는 억압받고 비천한 사람들의 상태를, 그리스어로는 비겁함이 아닌 유순함과 부드러움, 온화함이라는 뜻을 지닌다고 한다. 즉 구조악으로 인한 가난과 깊은 고통에 눌려 있어 오직 신(神)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약한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신의 부드러움과 평정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의 묵묵한 눈으로 감사를 잃고 더 많은 것을 바라며 넘치는 것도 잘 흘려 보내지 못하는 나의 조악함과 욕심을 보게 되니 왜 그런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에 대한 실망도 컸지만 균형잡힌 부드러움, 온유함, 가난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삶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과의 연대 등 내 삶에 불쑥 일어났던 이 짧은 사건이 던져 준 숙제는 여전히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구름에 실린 달팽이(geon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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