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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이야기꾼, 그래픽디자이너 윤종철

[2013-11-07, 14:23:46] 상하이저널
[Whu’s Interview 6th]  
이미지 이야기꾼, 그래픽디자이너 윤종철
 
그래픽디자이너 윤종철
그래픽디자이너 윤종철
  
말하고 싶은 날이 있다. 계절이 바뀌는 바람이 불 때나 모처럼 늦잠 자고 빈집에서 일어났을 때 같은 날들이다. 여러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디자이너 윤종철을 찾아갔다. 그는 느즈막이 일어나서 디자인하고 글을 쓰고, 아이와 산책하고 함께 밥 만들어 먹는 것이 요즘의 일과라고 했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레스토랑을 얼마 전에 접었다. 지금은 내년 초에 출판될 상하이 여행안내서 원고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새 일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리고 거실에 있는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잎사귀를 보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고백하자면, 그의 디자인 작업을 본 적 없다. 실력 있는, 실력만큼 인정받는 디자이너라는 말은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의 디자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디자인에 대한 그의 이야기였다. 그의 집은 강이 보이는 곳에 있다. 거실 창문에는 따로 커튼을 달지 않아서 강의 사계절은 일년 내내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집 곳곳에 놓인 서로 다른 디자인의 의자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이베이를 찾아다니며 모은 것들이다. 특히 시각적 효과 이상의 철학을 담고 있는 콘스탄틴 그르치치 konstantin grcic의 의자들은 그에게 여러 영감을 준다. 진지하게 의자 디자인을 직업으로 삼으려고도 했다. 기분 따라 다른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밥을 먹는다. 
 
반_왜 디자이너가 된 건가?

윤_디자인이 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좋았다.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이 좋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아티스트로서의 재주는 없었다. 예술가라는 건 주변 눈치 안 보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사람이잖아. 질러놓으면 그만인 게 그들의 역할이지, 설명은 그들의 몫이 아닌 거다. 나는 그러기엔 자기애도 충분하지 않았고, 꼼꼼한 성격이었다. 어떤 대상에 대해 그것이 왜 그래야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게 좋았다. 디자이너가 더 맞았던 거다. 첫 학부 전공은 행정학이었는데 이미 마음은 거기 없었다. 우선 시작한 전공은 마치는 게 낫겠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학부 전공을 마친 후 다시 처음부터 디자인 전공에 들어갔다.
 
반_무섭지 않았나? 28살에 다시 학부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윤_그때는 그게 무섭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나이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크기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도 했다. 전공을 마치고 한국으로 오니 32살이었다. 어느 회사도 선뜻 32살의 신입사원을 뽑으려고 하지 않았다.
 
반_아, 회사에 들어가려고 생각하긴 했었나 보다. 이미지에 비해 너무 착실한 선택 아닌가?

윤_나는 순종적인 사람이다. 하하. 그래서 작은 디자인회사에 디자인실장으로 들어갔다. 실장이라고는 했지만 실무 경력은 부하 직원들이 월등했다. 그들을 아랫사람으로 부릴 수 있었던 내적 근거는 아마 열정이었을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으니까 열심히 했다. 새벽 서너 시까지 작업해도 여전히 디자인밖에 생각하지 않던 때였다. 학부 시절부터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방학 때마다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이 경험들이 나중에 내 자산이 될 거라는 무모하지만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지 않나.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한 것이 내 디자인의 바탕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을 때, 지금의 아내와 잠시 여행이나 다녀오자고 왔던 곳이 상하이였다. 꼭 상하이에서 무엇을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시간과 비용을 따졌을 때 가장 적당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첫인상부터 충격적이었다. 뉴욕을 보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2005년 9월부터 상하이 생활을 시작했다.
 
행정학을 전공했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하고 있는 일과 상관없이 말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이미지만 다루는 디자이너라고 하기에는 그의 말은 너무 차근하고 아름답다.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반응과 대안에 힘을 싣는 그의 태도는 아마도 별로 재미없었다고 말하는 문과 전공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는 행정학에서 쓰는 ‘점증’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윤_나는 혁명가는 못 된다. 혁신가쯤이 어울린다. 이 시대부터 바꾸면, 나 자신부터 바꾸면 내 아이 세대쯤에는 이 세상도 변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태어난 그는 아직 ‘점증’적이어서 디지털로 일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에 기대 산다. 겨우 전화와 문자가 되는 예전 휴대폰을 아직 쓰고 글을 쓸 때는 꼭 펜으로 종이에 쓰려고 든다.
 
윤_여기 거실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데, 다 먹고 나면 밥 먹었던 그릇을 싱크대로 옮긴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을 보면 거실 테이블과 붙어있는 주방 테이블로 우선 모든 그릇을 올려두고, 몸만 주방으로 돌아간 다음 그릇들을 다시 싱크대로 옮긴다. 그런데 나는 한 번에 그릇 두어 개씩 들고 싱크대까지 옮겨둔 다음 다시 돌아와서 두어 개 그릇을 들고가는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게, 좀 더 내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원고 작업도 비슷한데, 펜으로 종이 위에 쓰면 글은 머릿속에서부터 한 번의 퇴고를 거친다. 컴퓨터로 원고를 쓰는 작업은 되는대로 적어두고 수습을 생각하는 것 같아서 선호하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의 차이 같은 것이다. 디지털이 대세이고, 앞으로 마땅한 방향인 것도 안다. 다만, 나와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반_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쓰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우선인 시대를 지나서, 기능의 구현이 가능해진 후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디자인 아닌가? 현대적인 의미에서 디자인의 시작점을 어디로 보아야 하나?

윤_현대 디자인의 시작은 바우하우스 Bauhaus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바우하우스의 명제가 현대 디자인의 근원이고 지향점이다. 일체의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하고 기능에 대한 근본적 사색과 성찰에서 탄생한 디자인이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 디자인이나 애플의 미니멀리즘 디자인도 바우하우스 정신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세계대전 시기에 바우하우스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다. 이는 현대 디자인의 정신이 미국으로 옮겨간 것이고, 그래서 뉴욕은 오늘날까지도 현대디자인의 메카로 남아있다. 유럽의 디자인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드러나는데, 애플과 포르쉐를 보자. 애플의 디자인은 기능성의 극점에 닿은 것처럼 보이고, 포르쉐는 제품이라기보다는 작품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디자인이지 않나. 어느 것이 낫다 못하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 디자인의 모토에 더 충실한가의 관점일 뿐이다.
 


디자인은 무엇을 화려하게 덧대거나 단지 예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의 출발은 기능성에 대한 검토이다. 펜은 잘 써져야 하고 카메라는 잘 찍혀야 한다. 나는 모나미 볼펜의 디자인에 감탄하는 사람이다. 설명서는 필요 없다. 누가 보아도 쉽게 이해하고, 값도 싸다. 심지어 심도 갈 수 있다. 잘 된 디자인이다. 그러니까 디자인은 기능 다음의 고려 대상이라거나 기능에 덧붙는 것이 아니라 기능 자체여야 한다. 같은 관점에서, 세종대왕은 최초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인 셈이다. 한글과 한글의 디자인을 따로 생각할 수 없다.
 
반_티셔츠는 어떤가? 시중에 팔리는 티셔츠를 보면 같은 모양에 프린트만 다른 것이 대부분이다. 프린트는 기능성과 상관없지 않나? 티셔츠 프린트는 단지 차별성을 위한 부분이고, 그것은 가치를 가지고 팔려나간다. 오늘날 디자인의 상당 부분은 단지 차별성을 위한 것은 아닌가?

윤_티셔츠의 디자인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덧붙는 장식적인 디자인도 물론 디자인이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부분과는 다르다.
 
반_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Sir Jonathan Ive의 디자인은 발표될 때마다 세상을 흔든다. 시각이 다른 모든 감각을 압도하고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분위기가 무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다. 역사를 보면 어떤 힘이든 영속적인 것은 없었다. 변한다는 것만이 진리였다. 따지고 보면 현대 디자인의 효시라는 바우하우스 역시 아르데코풍의 장식적 성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시각에 대한 쏠림은 이대로 지속될까? 아니면 언젠가 그 흐름이 변할 것이라고 보나? 변한다면 그 변곡점은 언제쯤일까?

윤_디자인의 스타일이라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디자인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은 점차 시각이라는 틀을 넘어서고 있다. 정형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서 사용자의 경험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사용자에게 더 큰 사용 편의성을 보장해 주려면 제품뿐만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는 방법, 나아가 제품을 사용하는 스타일까지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흐름이다. UI(User Interface)나 UX(User Experience) 같은 개념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디자이너는 기획자에 가깝고, 이야기꾼 구실을 해야 한다.
 
말할 때, 그의 손은 머그잔을 감싸고 있었다. 겸손한 손이다. 손은 그의 말과 박자 맞추는 것처럼 보였는데, 마치 말과 손은 가까운 친구사이 같아서 말이 나서면 손은 양해를 구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듯했다. 저 손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디자인은 아마 디자인 주변의 여러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반드시 이 디자인이어야 하는 이유를 낮은 곳에서부터 설명하는 그런 모양일 것이다. 아침부터 시작한 인터뷰는 정오에 가까웠다. 인터뷰를 마친다. 그의 디자인 하나 보지 못하고.

▷사진·글: Mark 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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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업 공간 Space Whu와 사진커뮤니티 fshanghai를 꾸리고 있다. www.spacewhu.net www.fshanghai.net
forgogh@gmail.com    [Mark Ban칼럼 더보기]

전체의견 수 1

  • 아이콘
    소라 2013.11.07, 15:39:44

    주변의 소소한 인터뷰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 포스가 남다르네요. Mark Ban칼럼보면 늘 느끼는 거지만 사진 정말 예술입니다. 저도 기회되면 한번 찍히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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