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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당신의 향기에 이름을 붙여 주세요

[2024-12-28, 06:28:28] 상하이저널



상하이의 겨울은 스산하다. 구름이 해를 가린 날은 잿빛 기운이 발끝까지 내려앉는 기분이다. 이런 날은 상념에 젖기에 안성맞춤이다. 뚜벅뚜벅 걸어가다 맞은편에서 오는 한 쌍의 남녀를 보았다. 도톰한 검은색 패딩을 입은 여자는 잰걸음으로 남자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뒤를 쫓으며 패딩에 붙어있는 모자를 씌어주려 애를 썼다. 남자의 손끝에서 여자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진다. 문득 그녀의 어떤 향기가 그를 움직이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각각의 향기가 있다. 제각기 뿜어내는 향이 달라서 좋고 나쁨을 가리기보다는 고유의 향을 지그시 느껴보는 편이 좋다.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어울리는 향을 찾아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들의 성격과 말투를 떠올리니 재밌게도 여러 가지 향과 매칭이 되었다. 음식 냄새가 나기도 하고 자연의 향이 나기도 하고 가끔은 매연의 쾌쾌함이 나기도 했다.



J에게는 갓 구운 쿠키 향기가 난다. 녹아내린 버터의 풍미가 입맛을 자극한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가벼운 농담도 잘 통한다. 살뜰하게 사람을 챙기는 솜씨 덕분에 주변에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뛰어난 유머 감각과 끼로 하루 종일 만담이 가능하다. 자꾸만 손이 가서 결국에 다 먹어 버리는 쿠키처럼 중독성이 강하므로 과다 섭취로 살이 찌는 것이 두렵다면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제어를 걸어둘 필요가 있다. 



Y에게는 나무 그늘 향기가 난다. 식물에서 나는 초록의 향과 수분을 머금은 젖은 흙냄새가 난다. 지치고 힘들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사람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안아줄 거란 믿음이 있다. 말 수가 적고 경청에 최적화되어 있다. 울분을 쏟아내도 그저 손을 잡아 줄 뿐 말이 없다. 침묵에서 전해지는 위로는 가슴을 뜨겁게 하고 스스로 키맨(key man) 임을 기억하게 한다. 지친 마음에 그늘을 드리워 쉬게 해주는 사람. 자주 보지 않아도 마음의 끈으로 이어진 느낌이 든다. 

 


M에게는 짙은 레몬 향기가 난다. 상큼한 향기에 매혹되지만 입에 대기 힘든 산도를 지니고 있다. 카리스마에 눌려 다가가지 못하고 어슬렁어슬렁 언저리만 10년 넘게 돌고 있다. 그렇다고 싫은 것은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좋다. 정신이 혼미할 때 한 번씩 만나면 톡 쏘는 새콤함에 정신이 번쩍 난다. 그녀의 말은 부드럽지만 콕 집어 허를 찌른다. 찔릴 땐 얼얼하고 아파도 틀린 소리 하나 없는 그녀의 말에 바로 수긍하는 편이다. 


2024년 나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났을까? 사람들 사이에 머뭇거리던 모습에서 풋사과 향이 났을까? 심통이 나서 보낸 문자 속에서 은행의 구린내가 나지는 않았을까? 눈치 없는 행동에서 드라이에 그을린 머리카락 냄새가 나지는 않았을까? 같은 문제로 제자리를 맴도는 답답함에서 압력 밥솥에 타버린 밥냄새를 맡지는 않았을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유쾌하지 않은 냄새만 떠오를 뿐이다. 



연말이니 좋은 향기 하나쯤 찾아보자. 얼마 전 한 아이에게 받은 크리스마스마스가 생각났다. 카드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일 년 반 함께 하며/정성을 느꼈습니다> 정성의 향기는 어떤 것일까? 엄마의 주름지고 투박한 손에서 느껴지는 손냄새가 아닐까?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지친 몸을 이끌고 새벽밥을 지어주는 마음 같은 것. 나의 숨겨진 향기를 알아채 준 아이가 고마울 뿐이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2025년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허스토리 영상으로 보기)

바다일기 me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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