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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쌤 교육칼럼] 삶의 파랑(波浪)

[2023-05-27, 07:27:19] 상하이저널

그림책은 일반적으로 글이라는 문자언어와 이미지라는 시각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시각 언어는 선, 색, 사진 등 그래픽 언어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색으로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있다. 특히 릴리아 글/그림 <파랑 오리>와 하수정 글/그림 <마음 수영>은 두 책 모두 파랑색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또한 한 세대의 생애와 다음 세대의 삶이 만나고 교차하면서 관계의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통찰을 담고 있다. 

<파랑 오리>에서 파랑 오리는 엄마 없는 어린 악어를 만나 엄마가 되어 준다. 매일 씻기고, 수영하는 법도 알려주고, 함께 연못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아기 악어는 장성했지만, 언제부터인지 파랑 오리의 기억이 도망가기 시작한다. 이제 악어가 늙고 치매가 온 오리를 씻기고 재우고 돌본다. 

<마음 수영>에서는 사춘기 딸과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혼자 할 수 있다고 뛰어들었지만 물은 생각보다 깊어서 무서운 딸. 팔도 다리도 예전 같지 않아 자꾸 몸이 가라앉는 엄마. 그러다 문득 딸은 엄마의 외로움을 발견하고, 엄마는 어느새 성장한 딸을 발견한다. 

파랑의 역사

<파랑 오리>와 <마음 수영>의 공간은 연못과 수영장이다. 즉, 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실제로 많은 생명체들이 깃들인 생태계의 장이자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 물이 파랑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투명한 물색을 왜 우리는 파랑색이라고 생각할까? 

바다가 늘 파란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바다를 흰색, 검은색, 빨간색, 금색, 회색 등 다양하게 변하는 색으로 보았다. 중세에는 녹색이 물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녹색 바다가 파란색으로 점차 바뀌게 된 것은 15~17세기의 항해용 지도 덕분이다. 당시 지도상에서 모든 종류의 물(강, 호수, 연못, 바다 등)이 파란색으로 표시되었는데, 이는 녹색을 부여받을 숲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미셀 파스투로 <색의 인문학> p12)

<파랑 오리>에서는 모노톤의 밝은 파랑색이 주를 이룬다. 면지도 파랗고, 연못의 물은 물론이고 오리의 부리도 발도 파랗다. 심지어 꽃들도 나뭇잎도 나비도 같은 톤의 파랑색이다. 괴테의 <색채론>에 의하면 파랑은 활기차고 명쾌한 색으로 모든 색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인 색으로 표현되었다. 괴테는 파랑색이 긍정적인 극점(능동적이고 따뜻하며 밝은 느낌의 색)이라고 보았다. (미셀 파스투로 <파랑의 역사> p227) 이 작품은 악어의 황갈색과 오리의 하얀 몸을 포함해서 3가지의 단순한 색상으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 배색은 토미 웅게러의 <아델라이드>에서도 세련되게 구사되어 있는데, <파랑 오리>는 좀더 명쾌하고 단순한 색상으로 좀더 인물들의 서사와 관계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파랑의 온도

 

<파랑 오리>의 파랑은 전혀 차가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림책의 중반과 말미에 두 페이지 가득 가로로 넘실 거리는 물 위에 오리와 악어가 같이 누워 있는 장면은 너무나 편안하고 상쾌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이 다 힐링이 된다. 그에 비해 <마음 수영>의 파란 물은 온도가 다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는 파란색이 따뜻한 색으로 통했으며, 때로는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따뜻한 색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다. 17세기에 이르러서야 파란색은 점차적으로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19세기에 비로소 파랑은 차가운 색으로서 자리매김하였다. (미셀 파스투로 <파랑의 역사> p302)

<마음 수영>에서는 파란 수영장 물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음 수영>의 물의 온도가 <파랑 오리>보다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수영장에 들어갈 때 체온보다 낮은 물의 온도 때문에 차갑게 느꼈던 경험이 작용할 것이다. 실제로 파랑색이 따뜻한 색에서 차가운 색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파란색과 물의 점차적인 결합이었다고 한다. 물을 파랑색으로, 파랑을 차가운 색으로 여기게 된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파랑 오리>의 모노톤과 달리 <마음 수영>에서는 관계의 변화에 따라 물의 색과 온도가 달라진다. 딸이 처음 수영장에 들어설 때는 베이비 블루였다가 엄마와 딸이 갈등을 보이면서 파랑색은 짙어진다. 하지만 엄마와 딸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나란히 있게 되면서, 파란색에 붉은 기가 조금씩 생겨난다. 서로를 곁에서 응시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의 미세한 변화가 파랑과 보라 사이의 그라데이션처럼 펼쳐진다. 파랑색이 얼마나 다양한 색채와 온도를 갖고 있는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마음의 결이 늘 같을 수가 없고, 관계의 상호작용 역시 계속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것을 색감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파랑 공간

“엄마, 이곳 기억해요? 엄마랑 나랑 처음 만났던 바로 그 파란 연못” 이라고 악어가 반복적으로 말한 것처럼, <파랑 오리>의 공간적 배경은 오리와 악어가 처음 만난 연못과 그 주변이다. <마음 수영>은 오로지 수영장 안에서만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왜 하필 실내 수영장일까? 엄마와 딸이 손을 잡고 마음을 나눈 뒤 수영장 물은 점점 보라색으로 변하고 수영장은 점점 확장되어 나중엔 가마득히 멀어지다가 보랏빛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다. 

어쩌면 수영장은 인생이라는, 누구나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제한된 공간, 이탈 할래야 할 수 없는 삶의 구조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힘으로 헤엄을 쳐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때로는 가라앉고 물을 먹으면서도 스스로 배우고, 삶의 파랑(波浪)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상처받을지라도 별빛처럼 빛나는 소중한 순간들 역시 수없이 만나기 마련이다. 엄마는 먼저 헤엄쳐 건너가서 딸이 헤엄치는 것을 지켜보다가 언젠가 밤하늘의 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삶은 계속될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의 돌봄을 받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고, 자신과 누군가의 생존을 책임질 나이가 되어서야 철이 드는 인생의 순환구조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것 같다. 한 생애와 다음 생애가 엮이고 겹쳐져 역할을 이어 받고 또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삶은 계속되고, 내가 경험하며 배운 것들을 다음 세대에 가르치면서 세상은 유지된다는 것을 두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김건영
-맞춤형 성장교육 <생각과 미래> 대표
-위챗 kgyshbs   
-thinkingnfutu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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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아이들과 책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쓴다.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 코칭과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청소년 인문캠프, 어머니 대상 글쓰기 특강 등 지역 사회 활동을 해왔으며, 도서 나눔을 위한 위챗 사랑방 <책벼룩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상하이저널과 공동으로 청소년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프로젝트 <청미탐>을 진행하고 있다. 위챗 kgyshbs / 이메일 thinkingnfuture@gmail.com / 블로그 blog.naver.com/txf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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