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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가을 나들이

[2011-10-21, 20:05:21] 상하이저널
파아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들…. 초등학교(그 당시엔 국민학교)운동회가 새삼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지금 이웃학교에선 체육대회가 한창이다. 머리가 아파 드러누워 있는데 귓가로 마이크소리가 쩡쩡거리고 있다. 아이들의 함성도 섞여있다. 무슨 뜻인지 정확힌 몰라도 어쨌든 기쁨의 소리들이다. 요즘처럼 축복받은 날씨에 우리들의 어린 시절도 저 같은 함성으로 가득 찼었다. 아침 일찍, 깨끗이 빤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들어서면, 각양각색의 만국기가 긴 줄에 엮어져,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신나고 경쾌한 음악소리에 맞춰 펄럭이고 있었다. 운동장 바닥엔 어느 새 하얀색 줄이 그어져 있고. 우리들은 다들 열심히 달리고, 달리고, 청팀, 백팀으로 나뉘어 머리에 띠를 두르고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줄다리기, 남자 아이들의 기마전, 학년별 릴레이-이건 정말 우리들 운동회의 클라이막스였었다.

어느 운동회 날,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목이 빠져라 쳐다보고 쳐다봐도 엄마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친구들은 제각기 엄마랑 같이 자리잡고 점심 먹을 준비에 바쁜데, 갑자기 아버지 눈과 마주쳤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깐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자했다. 사정인즉, 막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단다. 급히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이 딸이 속상해 울고 있을까봐 자장면이라도 사 먹이려고 달려 오신 것. 그러나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 날의 자장면은 아무 맛도 없었다. 그 때에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운동회가 기다리고 고대하던 잔칫날 같은 것이었는데, 이 날은 나 혼자 쓸쓸히 맥이 쑥 빠졌던 날이었을 뿐이다. 이 날만큼은 어떤 말도 내게 위안이 되지 않았었다. 동생이 걱정 되기는커녕 얄밉기만 했다. 나중에 동생의 병증상이 악화되었을 땐 살짝 반성도 했었다. 행여 나의 나쁜 맘 때문인 것 같아서 겁이 나서.

10월은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 쉬는 날도 많고 행사도 많았었다. 물론 소풍도. 지난 월요일, 아침 일찍 운동을 마치고 연안고가 밑에 자리 잡고 있는 홍차오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나름 우리들의 가을 나들이였다. 늘 같은 곳에서 운동하며 지내는 언니, 동생들과 준비해간 고기와 고구마, 가래떡을 숯불에 구워먹으니 꿀맛, 천상의 꿀맛(?)이었다. 우리의 숙련된 언니 덕에 고기가 살~살~ 익어가고, 술 한 잔에 우리들의 기분도 알딸딸해지고, 초록의 잎사귀들과 더불어 여유롭게 산책까지 하니, 순간 매일의 반복적인 생활의 지루함이 사르르 녹아들면서 온 몸과 맘이 이 멋진 가을 날씨에 동화되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우리들의 가을 나들이는 나름 대단한 성공작이었다. 도심 빌딩 속에서 오랜만에 느껴지는 유유자적의 미를 맛본 것일까? 일상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난 일탈이 주는 기쁨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얼굴이 떠올라 살짝 미안한 감이 들었다. 저녁으로 뭘 맛있는걸 준비해서 내 마음의 미안함을 채워볼까? 엄만 사실 오늘 공원에서 신선한 공기 들여 마셔가며 맛있는 식사를 했노라 차마 말하지 못하고서 고기를 나름 열심히 구워주었다. 많이 먹으라고 평소보다 다정스런 목소리로…. 가을바람을 쐬고 와도 난 역시 아줌마일 뿐인 것을, 엄마일 뿐인 것을. 그러나 오랜만의 이 나들이도 나의 어린시절의 운동회마냥 또 하나의 가을 추억 속에 남아있으리.

▷아침햇살(sha_b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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