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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이야기] 여.중.까(여기는 중국이니까)

[2012-11-05, 15:44:22] 상하이저널
15년 전, 신혼 시절에 상하이를 잠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초3, 초1 두 딸을 둔 지인 가족과 피자를 먹고 와이탄 구경을 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한국 커뮤니티도 없었거니와 두 아이 모두 온 지 얼마 안된데다 로컬학교에 다니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던 듯하다. 서로 ‘여중까’라 말하며 스트레스를 푸는데 “여중까가 뭐냐”라고 물었더니 ‘여기는 중국이니까’의 약자란다. 부부와 두 아이 모두 여중까를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며 중국에서의 삶에 적응하며 살아내고 있었다. 그 두 아이는 지금은 훌륭히 성장해 본인들이 원하는 전공과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로부터 5년 후, 나 또한 상하이에 터를 잡게 됐다. 먼저 온 지인으로부터 태양시장을 소개받고 시장 보러 간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막 이사 온 이웃과 시장을 찾았다. 그때만 해도 방울토마토가 때깔만 좋지 맛이 밍밍해서 우리는 가게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한 알씩 먹어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맛이 맹탕이었다. 상인을 뒤로하고 돌아서는데 난데없이 돈을 내란다.

순간, 당황을 넘어서 소위 아줌마들의 ‘뚜껑이 열렸다’라는 표현이 맞다. 두 알 값을 내라니! 한참 중국어가 입에 붙던 시절이라 엄청 실랑이를 했다. 그리고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하고. 분을 삭이지 못하던 차에 저녁에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말했다가 되레 타박만 들었다. 그럴 땐 한 세 알 저울에 올려놓고 사면 그만이란다.

어디 그뿐이랴. 아파트 단지 안 중국 부동산 중개소에서 DHL 서비스를 해준다길래 한국에 급히 부쳐야 할 소포를 맡겼다. 하지만 잘못 되려 했는지 소포는 제대로 가질 못했고, 수소문 끝에 받았지만 이미 파손된 상태였다. 잘잘못을 따지고 보니 애당초 DHL과는 전혀 무관한 업체를 통해 배송된 것을 알게 됐지만 이미 비용은 지불할 대로 지불하고.

한 번은 조기를 사서 굴비를 만들 요량으로 소금물에 담갔다. 이는 시어머님이 며느리인 내게만 전수해 준 초간단 굴비 만드는 법이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소금물이 샛노래졌다. 물들인 조기였던 것이다. 그 즉시 조기를 들고 시장에 가서 환불 받아왔다. 상인은 본인이 한 행동이 있어서인지 의외로 돈을 순순히 돌려주었다.

그때마다 여중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얼마나 위로했는지 모른다. 부정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맞닥뜨릴 때마다 한국과 비교하며 여중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며 한참을 지냈던 듯하다. 그리고 주위 엄마들과도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나누며, 말 그대로 중국 험담을 하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여중까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기가 중국이니까’ 도우미 아줌마를 고용할 수 있는 나를 보게 됐다. 최근엔 ‘여기가 중국이니까’ 조금은 더 저렴한 임금 때문에 편한 배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도 보았다. 예전엔 외국인이라서 받는 불편과 불합리만 눈에 띄었는데 이 또한 철저히 내 관점에서 나의 불편함 때문에 모든 것을 불합리하게 보는 일방적 시각임을 자각하게 됐다. 중국 로컬학교의 문이 좁아져 중국학교 경험 기회가 적어져 불평하고 있던 차에 외지인인 중국사람이 상하이 현지 학교 보내기가 오히려 외국인보다 더 힘든 것을 보면서 내 불평은 쏙 들어가게 되었다. 언어가 늘면서, 중국 문화에 조금씩 적응해 갈수록 ‘여기는 중국이니까’라는 말은 내 입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단골이라는 문화가 없는 중국에서 단골이라는 개념을 만들고자 한 것도 나이고, 그로 인해 ‘여중까’를 외치며 상처 받은 것도 어찌 보면 시작이 나였던 것이다. 내가 월급을 주고 고용한 도우미 아줌마라 그를 바꿔보고자 한 것도 나요, 유난히 노란 조기인데도 때깔이 좋다며 다른 집 조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구입한 것도 나다. DHL 서비스가 어떻게 우체국에 가지 않고 가능하겠는가? 여중까를 외칠 일이 아닌 것이다.

중국사람을 접하는 기회가 늘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하며 한국인인 내 생각이 무조건 맞다는 생각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이런 부정적인 일을 경험할 기회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남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중국에서 직장인으로, 그것도 사업을 이끌어가는 일이 정말 녹록치 않아 절로 부정적인 의미의 여중까라는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며 남편을 위로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 아줌마로 중국에서 살아가는 이상 여중까라는 말로 중국의 삶을 불평하기엔 이젠 시간이 아까운 듯하다. 여기가 중국이니까 주어지는 기회와 사람들에게 내 맘을 좀 더 써보려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내 남편의 고달픈 여중까의 삶도 언젠가는 긍정적인 여중까의 삶으로 바뀔 날이 오지 않을까? 더불어 우리 아이들이 여기가 중국이니까 경험할 수 있는 일들, 오히려 얻어갈 수 있는 게 더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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