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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김장

[2014-01-07, 10:46:20] 상하이저널

버틸 데까지 버텼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아직 그다지 춥지도 않은데 왜이리 이번 겨울은 유난스럽게 내 주위엔 김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점점 무얼 한다는 게 귀찮아 지고 간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먹거리만큼은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밖에서 별나고 맛난 음식 먹고 다니는 아이들 생각하면 최소한 집에서는 맛난 것 보다 건강식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늘 갖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 김장이란 것이 매 겨울 나에게 갈등을 느끼게 한다. 어떻게 하면 좀더 편하게 이 행사를 마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요 몇 달 살짝 유난스레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아 은근히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 계신 시어머니께 김장을 하려 한다며 이곳 마트엔 천일염이 없다는 투정에 몇 년 간수를 뺀 소금이랑 고추가루를 공수받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먼저 큰소리는 잔뜩 쳐 놨는데 막상 때가 되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도 한국사람은 김치를 먹어야 한다. 냉장고의 김치는 바닥이 나고 더 이상은 핑계를 댈 수 없을 즈음 지역신문에 배추 배달판매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다.

"아저씨, 배추 20포기에 맞게 무랑 갓 쪽파 보내주세요."

잠시 후 덩치 큰 조선족 아저씨가 배달을 왔고 난 쌓아 논 배추더미를 보고 있노라니 작년에 혼자 허리를 부여잡고 절이고 씻고 버무리던 생각이 떠올라 벌써 허리가 아파오는 듯했다. 아들녀석은 시어머니 김치를 좋아한다. 가끔 나에게 할머니 김치랑 된장 담그는 걸 배우란다. 나도 나름 나만의 맛을 내겠지만 이번엔 군대에서 막 전역한 큰아들을 위해 그 맛을 내보기로 하고 또 핑계 김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아이가 어머니 김치가 맛있데요. 가르쳐 주세요."

손주가 좋아한다는 말이 마음에 드셨는지 절이는 것 부터 버무리는 것까지 자세히 가르쳐주신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넌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김치 하나 못 담그냐 난 너보다 젊었을 때……"

그 말속에서 어머니가 아직 건재하시고 자녀들에게 당신의 맛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신걸 표현하고 계신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일러주신대로 김장은 잘했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절인 배추에 속을 잘 버무려 한 통 한 통 담고 친한 이웃에게 줄 것도 한 통 담았다. 김장 때면 빠지지 않는 수육으로 남편과 함께 배추 속에 싸서 먹으며 큰 행사를 마친듯해 뿌듯해 할 때 초인종이 울렸다. 가깝게 지내는 젊은 엄마가 과일 한 상자를 들고 인사를 왔다. 새해를 맞는데 이곳에서 주위를 돌아보니 내가 제일 어른이더라며. '아, 내가 벌써 인사받을 나이가 됐구나'란 생각이 드니 감사한마음과 부담감이 함께 다가오면서 동시에 어머니의 '너 나이가 몇 살인데..' 란 말씀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과연 아들이 원하는 할머니표 김치의 맛을 낼까? 익어가며 갖가지 요리로 또 다른 맛을 내겠지? 잘 담겨진 김장김치를 보니 전에 가졌던 부담감은 잊혀지고 기대가 되고 한결 기분이 좋다. 요즘같이 풍성하고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세상 예전만큼 가정의 큰 행사는 아니어도 가족을 위해 준비하고 수고하는 이런 관습들이 잘 보존하고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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