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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소개팅, 맞선, 결혼

[2021-04-07, 16:17:29] 상하이저널

 

어느 하릴없는 오후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다가 주인공들이 처음 만나는 장소, 대학로 그 즈음에 타임캡슐처럼 꼭꼭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생도, 할머니가 입어도 무방할 40년은 아우를 진 하늘색 남방에 통 넓은 칠부바지를 평소처럼 입고, 직사각형과 비슷한 모습으로 소개의 장소로 나섰다. 기대에 부응하는 상대가 나온 적도 없고, 이미 내 뜻대로 돼 본 적 없는 꼬여버린 청춘에 값을 매겨 누구의 평안을 위하자고 하는 짓인지 모를 일이었다.


소개팅남은 어느 대학 조교를 하는 사람으로 의외로 소년 같은 미소를 머금은 사람이라 첫 눈에 호감이었다. 오른쪽 시력은 굳은 듯 중앙을 지키는 동안 왼쪽 눈동자는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나에게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선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만나본 적 없고 맘에 들어 그런지 말도 잘 안 나왔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다시 학교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본격적인 대화랄 것도 없이 이제 막 통성명했건만, 경제적•감정적 소비를 중단할 것을 15~20분 만에 결정했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했지만, 연기인 것 같았고, 그의 빠른 판단력과 대담성에 당황한 나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밖으로 나섰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의 우산을 함께 쓰고 아무 말 없이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데, 슬쩍 그가 한쪽 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 좀 놀아본 오빠의 매너인지 아니면 호감인지 헷갈리며 나는 실로 오랜만에 설렜다. 지하철역에 가까워질수록 이 사람이 싫지 않았지만, 묘연한 그의 의중에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엔 어색한 인사만 남기고 도망치듯 돌아와 버렸다.

 

왜 사회생활을 하고 많은 만남을 가지면서 말주변과 넉살, 인격은 나이와 함께 성장하지 못했던 것일까?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경직된 사고로 자란 나에게 많았던 만남은 오히려 빨리 보고, 빨리 판단하며 더는 상처받지 않도록 방어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결혼하기에 적당하다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데 많은 에피소드가 남는다. 자식들에게 늘 만족하지 못하셨던 부모님은 20대 후반까지 변변치 않다고 생각하시는 여식을 골칫거리로 여기셨는지, 아는 인맥을 다 동원해 마음에 드는 혼사를 성사시키고자 하셨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둘째 딸 결혼 프로젝트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그나마 아버지가 딸의 손을 들어줘 백 보 양보한 사윗감은 그만저만해도 꼬맹이들 코 묻은 돈으로 소일하시던 오락실 사장님 댁과 사돈 맺으며 어머니는 기막혀 하셨다.


온 생을 다해 걸어가 결혼의 문을 열었는데, 그 후의 행복 또한 엄청난 인고의 노력으로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살아보고야 알게 된다. 그것은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결혼 운과 평탄한 가정 운을 맞는 것처럼 희박한 확률 값이다. 같이 사는 일로 지병과 마음 병이 생기고, 전 세계적 전염병 없이 오롯이 살아내기 어려운 이 시대에 이제 가족이란 같이 먹고 자고 사는 주거단위에 따라 묶이는 정의에 수긍해가고 있다. 앞으로의 세대들은 이 힘든 결혼을 권유받는 일 없이 자신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며 자유롭게 살았으면 한다. 물론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엄중한 의무를 수행하면서 말이다.


오늘은 창가의 볕을 받으며 ‘라라랜드’의 결말처럼 찍히지도 않은 필름을 돌려보는 봄날이다. 

 

여울소리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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