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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격리감상

[2022-01-31, 07:31:44] 상하이저널

“산미 있는 걸로 좀 추천해 주세요”.

내가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드립백 커피를 사는 이유를 이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아마 부부인가 보다. 두 사람이 서로 도와가며 커피를 만들거나, 컵을 닦거나 혹은 계산을 하는 모습이 커피 향만큼이나 좋다. 그래서 단골이 된 동네 작은 카페. 넉넉히 드립백을 사서 챙기는 것으로 나의 3주 격리 생활 준비는 시작됐다.

항공기 탑승 이틀 전, 반드시 두 가지 검사를 하고 결과가 모두 음성이 나와야지만 공항에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작정이라도 한 듯 영하 십 도쯤 이야 가볍게 넘어버리는 날이면, 이곳 추위가 나에게는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불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휴일이어서 이 곳 저 곳, 몇 번이나 전화 문의한 끝에 겨우 확인한 병원. 날은 추운데 병원은 집에서 너무 멀다. 검사해야 하는 날이 하필 성탄절과 겹칠 게 뭐람.

이름과 예약 여부를 확인하기 무섭게 채혈 통을 건네 주나 싶더니 옆 부스 앞에 주저주저 선 나의 콧구멍 속으로 무언가 밀고 들어온다.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무자비하게 코를 점령당한 박탈감. pcr 검사는 할 때마다 불쾌하다. 화가 난다. 채혈까지 마치고는 서둘러 병원을 빠져 나온다.

무사히 수하물을 부치고 잠시 숨을 돌리면서 메고, 들고있던 짐을 정리해본다. 벗을 생각 못하고 내내 입고 있던 패딩 점퍼 때문에 땀이 난 탓인지 등쪽이 서늘하다.

식당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 편의점에 들러 당장 마실 물 한 병과 튜브 3개들이 볶음고추장을 산다.

“도착하면 전화해.” 

남편이다.

“도착해서 수속하고 호텔 들어가면 새벽 일거야. 비행기 타면 어련히 잘 가려고, 그냥 먼저 자요.”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탑승구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밤새 에어컨을 틀었지만 온기라고는 별로 없는 방에서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난다. 열어 본 커튼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맞은 편 저층 아파트 붉은 지붕이 여기는 상해입니다, 하고 알려주는 것 같다.

이것 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꺼내 나열한 후 한 숨 돌리고 나서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의자에 앉는다. 
시간이 내 앞에 있다.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나라하게 시간 앞에 놓여진 나.

가져 온 책을 읽어도 보고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아무렇게나 펜을 놀려 보기도 하다가 그것도 따분해 지면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시즌 7까지 올라온 미국 드라마를 소위 정 주행으로 보다가 영어가 마구 들리는 신기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새 들이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포르릉대며 창 밖에서 오간다. 지저귀는 소리는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시간이 지나 새 들이 시간에 따라 정확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방 바깥 키 큰 나무들은 놀이터이고 일터인가보다. 해가 지고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이미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다. 내일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돌아와 바쁜 날갯짓을 하며 수없이 오고 갈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시간이 되면 창문을 열고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다.

새 해다.  
사실 나이를 어지간히 먹고 나서부터 한 해의 마지막 날 꼭 하는 일 같은 것은 없어졌다. 하지만격리라는 이름으로 집이 지척인 낡고 냉랭한 호텔 방에서 한 해 마지막 밤을 보내고, 떡국 대신 떡볶이를 해 먹으며 새 해 새 아침을 혼자 맞는 일은 아무래도 낯설고 조금은 서글프다. 평생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럴까?

멀리 어느 집 개가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무거운 겨울 저녁, 하루가 두터운 어둠의 이불을 덮어쓰고, 화려한 네온 사인이 마지막 반짝임과 함께 일시에 사라진 후, 맞은 편 라오팡즈 어디쯤의 식당, 직원들이 빨아 놓은 새하얀 식탁보를 펄럭이며 마지막 정리를 마쳤을 무렵, 아직 소등하지 않은 건물 외벽 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하이디(everydayne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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