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고 있다. <부산행>, <킹덤>, <살아있다>, <스위트홈>이 연달아 인기를 끌면서 K드라마, K뷰티, K팝, K방역에 이어 K좀비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2009년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들이 중고등학생 시절에 이야기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딸은 엄마 아이디로 웹툰을 봤었다고 이제사 고백해왔다. 그렇다면 아들은?) 이미 10년 전에 아이들은 이런 내용에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시 이런 장르를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 아이들의 공감 포인트는 무엇인지, 해외의 다른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사건의 발단은 학교폭력이다. 학교 일진 패거리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는 아들을 위해 과학 교사인 아버지가 공격성을 극대화한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상황을 덮으려고만 하는 학교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경찰 대신 “인간으로 죽느니 괴물이 돼서라도 살아남으라”는 게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의 과학실험실에서 실험용 쥐에게 물린 한 학생이 좀비로 변하고 감염자가 급속히 퍼지며 학교는 곧 아비규환의 장이 된다. 학생들은 119 신고를 시도하지만 접수되지 않는다. 상황을 통제하고 지휘할 수 있는 선생님도 없다. 학교는 고립되고 외부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학생들은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런 세상 누가 만들었는데, 작은 폭력이라고 그냥 넘기면 결국 폭력이 지배당하는 세상이 온다고 수백 번 경고했어. 아무도 내 말 안 들었어! 그럴 수도 있지. 애들끼리 싸울 수도 있지. 왕따당할 만하니까 당하지. 그런 생각으로 외면한 인간들이 지금 이 세상을 만든 거라고!!! (이병찬, 극중 과학교사)
코로나가 불러온 고립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야말로 ‘좀비 전성시대’ 혹은 ‘춘추 좀비 시대’를 만든 주요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각자도생 해야 하는 상황은 이미 우리에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는 일도 아니다. 옆자리 친구도 라이벌이 되어버린 학교는 언제 나를 물어뜯으러 달려들지 모르는 좀비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나 말고 믿을 사람이 없는 이 아수라장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희망은 있는 것일까?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학생들이 있었다. 공부는 못하지만 상황판단이 빠르고 지혜롭게 아이들을 통솔하는 온조, 용감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몸으로 돌파하는 청산과 수혁, 감염이 되고서도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본능을 억누르고 위기의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 반장 등 각자의 개성과 리더십으로 서로 돕고 협력해서 위기를 헤쳐 나간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기까지 친구들과 선생님, 온조 아빠의 희생도 따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차별하고 배제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나연이 같은 인물도 있고, 평소 성추행과 폭력을 호소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다 결국 좀비가 된 피해 여학생에게 응징을 당하는 선생님도 있다. 공교롭게도 혼자서만 살려고 이기적인 선택을 한 인물들은 모두 좀비가 되어버린다.
결국 폭력과 공격을 통한 생존이 원래 인간의 본성이 아니냐는 절망과 분노에 찬 과학 교사의 문제 제기에, 끝까지 살아남은 아이들은 사랑과 연대에 기초한 공존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답한다. ‘생존과 공존’은 인류가 무리를 이루고 도시 문명으로 발전시키고 갖은 시련과 전쟁을 겪어오며 지금의 문화와 문명을 꽃피우기까지 철학과 정치사상의 가장 핵심 문제였다. 공동체와 정의를 위한 사람들의 갈망과 투쟁이야말로 대박 난 K 드라마들이 공유해 온 공식은 아닐는지. 그리고 여전히 학교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생존과 공존을 짊어질 인재들을 키워내는 공간이기에 우리는 계속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전쟁이 나도 안 없어지는 게 학교야! 전쟁에서 이겨도 학교가 없으면 지는 거라고!”(박은희, 극중 국회의원)
20년째 아이들과 책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쓴다.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 코칭과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청소년 인문캠프, 어머니 대상 글쓰기 특강 등 지역 사회 활동을 해왔으며, 도서 나눔을 위한 위챗 사랑방 <책벼룩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상하이저널과 공동으로 청소년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프로젝트 <청미탐>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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