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분출된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과 주권의지가 결집되어 성립된 것이다.
나아가 일제의 온갖 탄압과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갖은 풍파에 시달리면서도 정부 조직을 유지 고수해가며 27년간의 대장정 끝에 결국 조국 광복을 이루어낸 독립운동의 불사조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원이 된 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이 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우선 발생가치의 측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표출된 한국민족의 독립의지와 주권의식의 소산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3·1운동에는 우리 민족 200여만 명이 참여해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했다. 이제 독립국이 되었고, 자주민이 되었으니 경술국치 이후 단절된 민족정권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국내외 각지에서 임시정부를 세웠고, 그들을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성립한 것이다. 절대다수의 민족대중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립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 할 수 있다. 이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발생가치인 것이다.
이렇게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떠한 역할가치를 갖고 있는가. 정말 이름에 걸맞는 활동을 한 것인가.
이 점이 바로 임시정부가 갖는 다른 하나의 역사적 의의이다. 한마디로 말해 임시정부는 1919년 수립된 이후 1945년 8·15일 광복의 그 날까지 한국민족의 대표기관이자 독립운동의 총괄지도 기관으로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연통제와 교통국을 설치해 국내 동포와 연결하였고, 또 중국 만주와 노령 동포는 물론 미주 동포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은 물론, 만주의 독립군단을 통솔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이 위기 빠졌을 때는 의열투쟁으로 특공작전을 수행해 이봉창 의거로 일왕의 처단을 노리고, 윤봉길 의거로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기념식장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라 좌우합작을 이루어 조국광복에 대비하며 광복군을 창설해 연합군과 공동작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 결과 1943년 11월 카이로선언을 통해 일본 패망 후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받는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했으니, 역할 가치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갖는 존재가치다. 실로 임시정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암흑 속에 빛나는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암울하고 전망이 불투명했던 일제강점기 국내외 동포들은 임시정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독립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국내로 들어와서는 임시정부를 팔지 않으면 밥도 얻어먹지 못한다”는 여성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열변이나, 일제 말기 강제로 학병에 끌려간 장준하나 김준엽 같은 청년학생들이 오직 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만 믿고 목숨을 걸고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이 된 사례 등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 가치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임시정부는 우리가 진로를 잃고 방황할 때, 길잡이가 되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이정표 같은 존재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보훈처장 김양 前주상하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