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새소년’에서 보았던 미래 세계 상상화 속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전화는 ‘용건만 간단히’ 그것도 어른들만 하시는 것으로 알던 그 시대의 나로서는 신기함을 너머 황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그림이었는데, 이젠 내가 그 영상통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한국에 계신 어른들과 그 보다 더 멀리 있는 지인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보고 싶을 때 마다 바로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통신이 발달하고 보니 손으로 열심히 써서 보내던 편지를 써본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짐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 꾸러미를 발견했다. 빛 바랜 편지지 속에 깨알같이 써있는 친구들의 글씨를 보며 그 시절 함께 나누었던 기쁨, 고민, 비밀 이야기가 하나 하나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때 나는 꽤나 열심히 편지를 썼던 기억이 있다. 매일 보는 친구들에게 뭐그리 할 말이 많았던 것인지, 예쁜 편지지에 만년필로, 알록달록 예쁜 볼펜으로 가끔은 만년필 글씨가 번지도록 눈물까지 한방울 똑 떨어진 데코레이션(?)으로 정말 열심히 편지를 주고 받던 기억이 난다. 우체통 속에서 내 이름이 써진 친구의 편지를 보는 순간의 기쁨, 별것 아닌 일에도 그 친구와 나만의 비밀이 생기고 그 비밀이 아주 큰 우정이라도 되는듯 편지를 읽고 얼굴을 보면 더 반가웠던 기억. 그 당시 친했던 친구가 남학생에게 받은 열 몇장 짜리 편지 위에 번호를 매기듯 써있던 ‘솜방울 하나, 솜방울 둘….’ 이라는 유치한 문장에 그 친구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던 기억. 지금은 기억 나지도 않지만 그 시절 꽤나 심각했던 고민들 까지……
시간이 흘러 남자 친구가 생긴 후에는 그 정성이 고스란히 남자 친구에게 집중되어 그 당시 군대에 있었던 지금의 남편에게 정말 열심히도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파는 편지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편지지를 만들고 행여 글자 하나라도 틀릴까, 글씨가 미워질까, 조심조심 써내려 가던 그 편지들…… 군대 생활의 규율 때문에 소지품 검사 전 날 모두 불태워 버렸다는 내 편지들, 지금은 태연하게 말하지만 어쩌면 그 편지를 태우며 남편은 눈물을 스윽 훔치지 않았을까?(그 순간을 떠올린 내 각색에 의하면 말이다.)
남편과 결혼 말이 오가며 시골에 계시던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던 날, 아버님께서 ‘집에 가서 읽어봐라’ 하시며 두툼한 봉투를 내주셨다. 열세장에 걸쳐 써주신 아버님의 편지를 읽고, 여러 번 강조해서 쓰신 말씀에 대답을 드리기 위해 고심해서 답장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 답장 속에는 지금은 잊혀진 결혼 전 장한 결심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텐데, 혹시 우리 아버님 막내며느리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드실때 마다 그 편지 꺼내서 읽어 보시는건 아닐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직접 말로 하는 것과 달리 하고 싶은 말을 한번 더 생각해보고, 그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글로 전달하는 것이 좋은 점 이라는 생각이다. 상대방이 고심해서 적은 글을 읽으며 받는 감동은 툭 내뱉어진 말보다 훨씬 길게 남으니 말이다. 친구들에게 오랫만에 편지를 써야겠다. 예쁜 편지지 고르고, 손에 익은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 ‘친구야’로 시작하는 소박한 내용이지만, 청구서 투성이인 우체통 속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는 친구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푸둥연두엄마(sjkwon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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