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19년의 3.1 운동 후 조선 총독부에 맞서 독립을 위해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 및 선포하였다. 8.15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을 통할하는 최고기관으로 활약하였지만, 일본의 중국 본토 침략에 따른 탄압을 피해 약 8차례 이동하다가 일제 말기인 1940년 총칭으로 이전하였다.
김구 선생은 1932년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또 이덕주와 유진만을 통해 일 왕 및 일본 총독의 암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심해진 일본의 감시와 박해를 피해 상해 임시정부는 5월 상해를 떠나 항저우에 자리잡았고 그 후 5년 동안 항저우 임시정부가 항일 투쟁과 독립 운동을 총괄하게 되었다.
항저우 임시정부는 과거에 활동했던 8개의 임시정부 중 복원된 3개의 임시정부 (상하이, 항저우, 총칭) 중 하나인데, 항저우의 명소인 서호 근처에 위치해있고 2007년에 개관했다. 인접한 건물과 골목길을 보면 한국에서 오는 몇 관광객을 빼면 누가 쳐다보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한산하고 조용하다고 한다. 허름한 기념관 앞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항저우구지기념관”이라고 적혀져 있는 간판이 있고 건물 내부에는 상하이 임시정부와 같이 그 당시 독립 운동가들이 사용하던 침소, 집무실, 가구, 부엌 등이 재현되어있다. 또 김구 선생의 흉상, 애국지사들의 친필이 담겨있는 태극기, 백범일지 단행본 등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항저우시에 의해 복원된 이 기념관은 2002년 중국 정부의 승인을 얻고 난 후, 기념관 설계, 거주민 이주 등을 한 뒤 2007년이 되서야 복원이 완료되었다. 개관 후 3년인 2010년까지는 항저우 시가 연간 60만위안에 달하는 비용을 부담하며 임시정부 청사를 관리했지만 그 후로는 지원이 끊겨 일인당 10원인 관람료와 1층에서 파는 연고나 부채 등 밖에 수입원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독립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유적지 중 하나인 항저우 임시정부가 중국 정부에 의해 복원되었고 게다가 운영비조차 충당하기 어렵다는 소식은 믿기 어려웠다. 일제 치하 탄압에 맞서 대한민국의 독립에 몸과 마음을 바쳤던 독립 운동가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 기뻤지만 이를 더욱더 잘 보존하고 기려 후대에 넘겨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소: 杭州上城区长生路湖边村23号
▶개관시간: 오전9시 ~ 오후4시30분
▷고등부 학생기자 이규민(SSI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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