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중국은 소외되는 것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TPP가 협상에 성공할 경우, 중국도 참여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두 번째 WTO 가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쉽지 않은 사안이다.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과 3위인 일본 등이 참여하며 높은 수준의 개방을 요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국 간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다. 반면 중국이 참여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는 아직 실질적인 협상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한 상태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가 형성되면서 중국 내에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TPP 협정에 빨리 가입해서 정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 경제의 제도적 문제로 가입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제로 관세, 국유기업 개혁, 노동자 권익 향상, 환경 보호, 지식재산권 보호 등은 하나같이 민감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단계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내 무역 협정은 경제적 이익 외에도 정치적 전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략적 상호 신뢰가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높은 친밀도와 신뢰도를 요구하는 자유무역 협정은 중국과 미국에 아직 현실적이지 않다.
6월 4일 오후 G7 정상회담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막했다. 세계 경제 공동 선언문 초안은 ‘세계 경제의 안정적인 추세’라고 요약할 수 있다. 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하며 균형 있는 성장을 목표로 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국이 동일한 입장과 행동을 취한다는 내용이다. 선언문에 따르면 각국 정상은 11월 호주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담에 참여해 재정•통화, 투자, 중소기업, 여성 취업, 무역 등 광범위한 분야의 경제 성장 전략을 논의할 것이다. 선언문 초안은 ‘무역과 투자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의 주요 원동력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TPP, 일본•유럽 경제동반자협정(EPA) 등 6개 무역 협정을 나열하며 각국이 협정 체결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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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지도부 출범 이후 중국의 군사 및 외교분야는 경제분야보다 더 많은 이목을 끌고 있다. 중국 경제가 연착륙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중국 경제가 위기 상황에 있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세력 약화가 냉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균형을 유지해 온 국제체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단극체제로의 재편에 성공한 후 망설임 없이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단일 패권체제에서 단일 시장과 제도는 그 패권 영향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미국은 패권안정론 차원에서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2차 대전이 종식된 지 반세기가 넘었고 냉전 와해 이후로도 20여 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전 세계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단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하드웨어적인 기반에서 중국의 활동 공간은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미국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미국 주도로 진행되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세계은행, WTO, IMF 등 미국 주도의 국제기구들이 2008년 이후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 국제적 경제위기에 대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아지면서 미국의 지위도 큰 상처를 입었다. 중국은 미국이 가진 하드웨어적 기반을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구축한 세계화 체제 내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돌리고 주도적인 지위를 점하는 상황이다. 미국으로서는 유로존과 같이 강력한 블록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급진전시키며 우려스러운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참고) 임반석, “TPP와 동아시아 RCEP의 경합과 보완의 가능성”, 한국동북아논총,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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