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시국이다. 이 시국의 타개는 국민의 목소리이자 권리인 투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 참정권의 범주 안에 속한 국민에 18세와 재외국민은 포함이 되지 않는 걸까? 18세 참정권 부여와 이번 대통령 보궐선거에 대한 재외국민 제외 문제가 재점화되고 있다.
OECD 35개국 중, 18세에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일부는 만 18세가 아직 고등학교를 재학 중이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간접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18세의 ‘미성숙함’을 들어 그들의 참정권 결여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촛불시위 때 보여준 18세를 위시한 청소년들의 국민으로서의 의무에 대한 책임감은 이런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혹자는 말한다, 학생이면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치중하고 정치는 우리 어른들에게 맡기라고. 하지만 오죽했으면 그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을까? 더군다나 공부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저런 구시대적 발언을 하는 ‘어른들’이 형성해 놓은 좁디좁은 등용문을 통과하여 사회적 인정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다. 공부의 본질은 개개인적 가치관 성립에 있다. 사회가 개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모여서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건강하고 올바른 정치는 수치와 성적으로서만 수렴되는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건강하고 올바른 개개인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점진적인 것으로서, 학생들의 정치 참여에 관한 억압은 이를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통령 보궐선거 때의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한 제한은 어떤가. 재외국민들은 한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긍지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으며, 정치 참여도도 높다. 몇몇은 해외에서 과연 얼마나 한국의 실정을 이해하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해외에 있기 때문에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더 넓게 한국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 관한 이해도가 부재했다면 참정권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듯 우리나라의 정치의식은 비교적 낮다. 흑백논리와 황색언론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변혁과 개혁은 필수 불가결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시국은 통탄할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뻐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아무리 호화스럽고 번지르르하더라도, 모래 위의 집에 불과하다. 무언가에 관한 창조는 또 다른 무언가의 파괴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염원하는 성숙한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취할 수 있으리란 것은 자명하다.
고등부 학생기자 강지우(콩코디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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