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부터 전 세계에 분포한 나무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다. 그래서 2억 년 이상 현재의 모습을 간직해와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노란 잎으로 도로변을 물들이는 은행나무의 모습은 예전부터 가을마다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일 것이다. 은행나무 특유의 악취로 인해 매년 민원이 끊기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렇게나 익숙한 은행나무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따로 있다. 바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과는 반대로 은행나무는 멸종위기종, 그중에서도 IUCN 적색 목록의 ‘위기(Endangered)' 등급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이는 레서판다, 고래상어와 같은 등급으로 다섯 등급 중 세 번째에 속한다)
은행나무가 멸종위기종?
은행나무의 역사와 한국과 세계의 은행나무 분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은 나무의 하나로, 서울 시내 가로수의 35% 정도인 10만 여 그루를 차지하고 있다. 가을에는 눈을 돌리면 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가로수로 흔하게 보이는 나무다. 은행나무가 전성기를 맞았던 쥐라기와 백악기 초기로 돌아가면 은행나무는 전세계적으로 균등하게 분포해 있었다.
하지만 백악기 중기에 이어 트라이아스기 (약 2억 년 전)에 은행나무가 분화한 이후 현존하는 은행으로 이어지는 계통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멸종했고, 이후 신생대에 들어서면서 은행나무의 서식지는 계속 축소되어갔다. 이에 따라 남반구의 은행나무종들은 모두 멸종했으며,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고위도 지역에서도 날씨가 한랭해지면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은행이 1500만 년 전 멸종했다. 멸종하지 않고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이 현존하는 은행나무로, 유일한 자생지는 한국도 아닌 중국의 저장성 일대이다. 대한민국에 은행나무가 들어온 것은 16세기 말 이전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은행나무 화석은 남북반부에 걸쳐 널리 분포했지만, 살아있는 은행나무는 주로 동아시아 등지 (일본, 한국, 중국 등)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우리나라 기후와 토질이 은행나무 생장에 적합하여 우리나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가 멸종의 위기에 처한 이유
그렇다면 중생대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번성하던 은행나무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기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야생 번식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종자가 크고 무거운데다 악취와 독성이 있어 동물들이 씨앗을 퍼뜨리기 꺼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린 나무가 종자를 맺기까지는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려 은행나무가 자연적으로 번식하려면 다양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중생대에는 공룡 혹은 다양한 대형 파충류들이 번성해 동물들이 과육을 먹어 씨앗을 퍼뜨렸을 것이라고 한다. 중생대 말기 대멸종이 일어나며 기후변화와 씨앗을 퍼뜨리던 동물의 멸종이 동시에 일어나 은행나무가 많은 지역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쇠퇴해가던 은행나무의 명맥을 이은 것은 사람이다. 은행나무는 신생대의 마지막 빙하기 때 중국 일부에만 살아남았는데, 현재의 은행나무는 장수는 물론이거니와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바탕으로 사람을 매개동물로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나무는 만약 인류가 멸종하면 함께 멸종할 생물종 1순위로 자주 뽑히곤 한다.
중국·한국의 은행나무 명소
물론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긴 하지만, 은행나무는 수명이 길어 서식지 곳곳에서 수백 년 살아남은 거목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가을이 끝나가는 시점, 중국과 한국에서 아름다운 가로수 은행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대표 명소 두 곳을 추천하려고 한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1100년)
시안(西安) 중난산(终南山) 구관음선사(古观音禅寺) 은행나무(1400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은행나무는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이다. 이 나무는 높이 42m, 뿌리 부분 둘레 15.2m로 국내에서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앞에 서면 압도되는 크기로, 1,100년 이상의 수령과 함께 깊은 감동을 불러오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보존 가치 또한 높아 용문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돼 있다. 심지어는 나무에 대해 나라에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는 것과 같은 다양한 전설이 내려와 지역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매우 신성시하고 세심히 돌본다.
중국에도 1,400년의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은행나무가 있다. 이는 시안(西安) 중난산(终南山) 구관음선사(古观音禅寺)에 있는 한 은행나무로, 매년 10월 떨어지는 은행나무잎이 연출하는 금빛 카펫을 보기 위해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무가 사실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특유의 냄새에 무작정 불평하기보다는 현존하는 유일한 은행나무 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일상적인 거리의 풍경을 만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학생기자 이성현(상해한국학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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