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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칼럼] 노력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2023-09-18, 18:49:08] 상하이저널

학교 다닐 적 친구들 앞에서 공부하지 않았다. 몰래 했다. 왜 그랬나?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지 않고도 시험 잘 보는 친구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저렇게 열심히 해서 공부 못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 혹은 저렇게 하고도 성적이 그것밖에 안 되냐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다. 머리가 좋은 아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부모님들도 자주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온다.”

친구들을 방심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없진 않았다. “어제 TV 보느라 공부 하나도 못 했어”하면 친구들이 마음을 놓을테고, 그 해이해진 틈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조금 심했나. 그렇다면 이렇게 변명해 본다. 질투받기 싫었다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대견하고 뿌듯하기 그지없지만, 남이 그리하면 왠지 독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 마음의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고 봐주면 고맙겠다.

“친구 깨워서 함께 공부 해야지, 왜 너만”

고등학교 1,2학년 때 네 명의 친한 벗이 있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그중 한 친구 집에 모여 공부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할머니와 한방을 썼기 때문에 시험 기간 일주일가량은 우리 친구 넷에 할머니까지 다섯 명이 동거했다. 늦은 밤 친구들이 다 자고 나 혼자 공부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나무라셨다. 우리 손주 자는데 왜 불을 켜 놓느냐고, 친구 깨워서 함께 공부 해야지, 왜 너만 하느냐는 말씀이셨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가 주무시면 다시 공부했다. 머리보다는 엉덩이로 승부하는 사림이었으니까. 

“물려받은 기업인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을 무시한다”

기업인 세계도 마찬가지다. 기업에서 회장 세 분의 비서실에서 일한 경험으로 말하자면, 기업인도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물려받은 기업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내가 느낀 바로는 물려 받은 기업인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을 무시한다. “언제부터 자기가 잘살았다고”, “돈벼락을 맞아서 말이야”하며 업신여기고 자기들 세계에 끼워 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리그가 분명 있다. 피눈물 나는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물려받은 주제에 말이다.

자수성가한 기업인도 두 부류로 나뉜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천신만고 끝에 기업을 이룬 사람과 세상을 읽는 통찰력과 아이디어로 단박에 성공 신화를 만든 사람, 이 역시 후자가 더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이제는 천신만고형이 나올 확률도, 또 나온다고 하더라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노오력’만으로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혹은 특정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또는 젊었을 때 고시 한번 합격한 이력으로 그것이 신분이 되어 평생 떵떵거리며 정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아둥바둥 그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을 우습게 안다. ‘금수저’를 물로 태어났거나 ‘소년 급제’한 이들은 애쓰면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라거나 악착같다는 낙인을 찍기도 한다. 또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씌우기도 하고,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기도 한다.

오죽하면 ‘노력충’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이 말은 노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신조어지만, ‘노오력’만으로는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는 자조를 담고 있기도 한다. 젊은 세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노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부족한 재능을 시간으로 때운다”

직장을 떠나 책 쓰며 살면서 또다시 느낀다. 세상에는 처음부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가 있다. 기업 회장실이나 청와대에서 함께 글을 썼던 사람 가운데는 특히 그런 ‘넘사벽’들이 많았다.

나는 부족한 재능을 시간으로 때웠다. 쓰는 것은 재능이 필요하지만, 고치는 건 노력으로 가능하다. <노인과 바다>를 쓴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그랬다고 한다.
“나는 초고는 끔찍한 수준이다. 나는 늘 글쓰기가 어려웠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수십 번, 수백 번 고쳤다.”

내가 모셨던 분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성실하다는 것이다. 하나같이 노력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설을 했다. 한때는 정치가 곧 연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원로를 작성했다. (중략)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은 일종의 공부였고 현안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중략) 나는 내 연설문을 역사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래서 늘 진지했다.” (김대중 자서전 2)

김우중 대우 그룹 회장 역시 “시간은 아끼되 땀과 노력은 아끼지 않는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게으른 베짱이보다 부지런한 개미가 더 행복한 세상”

게으른 베짱이보다는 부지런한 개미가 더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타고난 사람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더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재능이 신분이 되고 기득권이 자격이 되는 것에 반대한다. “대학도 안 나온 놈이 어딜 감히?”, “어디 근본도 없는 녀석이 넘볼 걸 넘봐야지.”라고 말하는, 노력이 폄훼당하고 조롱당하는 세상은 희망이 없다. 진보와 진화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노력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를 내는 사람보다는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은 사람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재도전과 역전의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뱁새가 황새 쫓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은 참 불순한 말이다. 한계를 인정하고 분수에 맞게 살라고?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황새로 태어나지 못한 게 내 잘못인가? 다리 짧은 뱁새는 평생 황새를 부러워만 하고 살아야 하나?

싫다. 종종걸음이라도 쫓아가 볼 것이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강원국의 <진짜 공부> 中

[강원국]
저술가, 강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실 행정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 등으로 일하며 리더들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었다. 지금은 집필, 강연, 방송 활동에 전념하며 자기 말을 하고 자기 글을 쓰며 산다.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나는 말하듯이 쓴다>, <어른답게 말합니다>, <결국은 말입니다>, <진짜 공부>를 펴냈다. 2020년부터 KBS1라디오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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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의견 수 1

  • 아이콘
    최평강 2023.11.02, 23:31:10
    수정 삭제

    교회를다니는데도 예수를안믿고 잘못믿어서 지옥가는거죠 교회를안다니더라도 예수를진심으로믿고 또 교회를끝까지 안다니다가도 죽기전에믿으면 천국가는것인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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