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계절을 두고 누군가 ‘봄 – 여어어어어름 – 갈 – 겨어어어어울’이라 표현하는 걸 들은 적 있다. 가을은 그만큼 짧고, 도망치듯 금세 사라진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 끝자락에 가을이 훅 치고 들어왔을 때, ‘우리 어디로든 가자’ 하며 남편의 손을 끌고 무작정 밖으로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연인의 입술을 훔치듯 순간을 잡아채지 않는다면, 가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테니까.
어디로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나온 걸음이 잠시 멈춘 곳은 작은 공원이었다. 길을 걷다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들의 멋들어진 손사위에 반해 공원에 들어섰을 때, 마침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모자까지 맞춰 쓰고 춤을 추는 이들은 몹시 진지했고 얼굴은 웃음으로 환했다. 춤사위가 세련된 건 아니었지만,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하지 않고 힘을 빼며 흐름에 따를 때 우리는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추분이 되면 높아진 하늘로 고개를 들어 노을이나 달빛, 별빛을 바라보고, 상강에는 붉게 물든 단풍을 찾아 산에 오른다. 계절을 두루뭉술하게 뭉쳐 보내는 대신 짧은 절기로 나눠 그때에 꼭 맞는 계절의 맛을 느끼며 사는 일이야말로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사랑에도 절기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사랑도 가을처럼 짧기만 하다. 한번 지나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절기를 챙기듯 챙기면 어떨까. 처음 만났던 날이나 첫 데이트, 사랑을 고백했던 날 등을 매년 기억하며 서로에게 애정과 감사를 표현하는 기념일은 사랑의 절기라 부를 수 있다. 봄에는 벚꽃 피는 날짜를 기억했다 꽃구경을 같이 가고, 가을에는 하늘이 예쁜 곳을 물색해 두었다 연인과 함께 가는 등 계절에 맞는 데이트를 기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눈이 오면 먼저 보는 사람이 연락해 함께 따뜻한 코코아를 마신다든지, 연말이 되면 새해 계획을 가장 먼저 알려주고 서로를 축복해 주는 연인만의 연례행사를 약속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 이 계절에 무얼 하고 싶은지, 미루지 말고 챙겨야 할 기쁨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늘 살피면서 지낼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해마다 설레며 기다리게 되는 당신만의 연례행사가 생기기를.”
(김신지 <제철 행복> 중)
코앞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애들이 다 자랄 때까지, 또는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자며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마냥 미루는 부부나 연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잠시 스쳐가는 이 계절, 사랑의 절기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소중히 챙겨야 할 기쁨은 무엇인지, 내가 미루고 있던 사랑의 표현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기쁨을 챙기며 함께 누린 기억이 쌓이면, 가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연인과 함께할 시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짧은 가을처럼, 사랑도 절기로 쪼개어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잘 붙들어 누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