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상하이의 사랑법 18] 사랑에도 절기가 필요하다_ 샹양공원(襄阳公园)

[2024-10-18, 19:42:59] 상하이저널

우리의 사계절을 두고 누군가 ‘봄 – 여어어어어름 – 갈 – 겨어어어어울’이라 표현하는 걸 들은 적 있다. 가을은 그만큼 짧고, 도망치듯 금세 사라진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 끝자락에 가을이 훅 치고 들어왔을 때, ‘우리 어디로든 가자’ 하며 남편의 손을 끌고 무작정 밖으로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연인의 입술을 훔치듯 순간을 잡아채지 않는다면, 가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테니까.

어디로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나온 걸음이 잠시 멈춘 곳은 작은 공원이었다. 길을 걷다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들의 멋들어진 손사위에 반해 공원에 들어섰을 때, 마침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모자까지 맞춰 쓰고 춤을 추는 이들은 몹시 진지했고 얼굴은 웃음으로 환했다. 춤사위가 세련된 건 아니었지만,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하지 않고 힘을 빼며 흐름에 따를 때 우리는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추분이 되면 높아진 하늘로 고개를 들어 노을이나 달빛, 별빛을 바라보고, 상강에는 붉게 물든 단풍을 찾아 산에 오른다. 계절을 두루뭉술하게 뭉쳐 보내는 대신 짧은 절기로 나눠 그때에 꼭 맞는 계절의 맛을 느끼며 사는 일이야말로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사랑에도 절기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사랑도 가을처럼 짧기만 하다. 한번 지나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절기를 챙기듯 챙기면 어떨까. 처음 만났던 날이나 첫 데이트, 사랑을 고백했던 날 등을 매년 기억하며 서로에게 애정과 감사를 표현하는 기념일은 사랑의 절기라 부를 수 있다. 봄에는 벚꽃 피는 날짜를 기억했다 꽃구경을 같이 가고, 가을에는 하늘이 예쁜 곳을 물색해 두었다 연인과 함께 가는 등 계절에 맞는 데이트를 기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눈이 오면 먼저 보는 사람이 연락해 함께 따뜻한 코코아를 마신다든지, 연말이 되면 새해 계획을 가장 먼저 알려주고 서로를 축복해 주는 연인만의 연례행사를 약속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 이 계절에 무얼 하고 싶은지, 미루지 말고 챙겨야 할 기쁨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늘 살피면서 지낼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해마다 설레며 기다리게 되는 당신만의 연례행사가 생기기를.”
(김신지 <제철 행복> 중)

코앞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애들이 다 자랄 때까지, 또는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자며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마냥 미루는 부부나 연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잠시 스쳐가는 이 계절, 사랑의 절기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소중히 챙겨야 할 기쁨은 무엇인지, 내가 미루고 있던 사랑의 표현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기쁨을 챙기며 함께 누린 기억이 쌓이면, 가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연인과 함께할 시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짧은 가을처럼, 사랑도 절기로 쪼개어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잘 붙들어 누릴 수 있기를.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위챗: @m istydio, 브런치스토리 @yoonsohee0316)
master@shanghaibang.com    [윤소희칼럼 더보기]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박물관 리터러시 ①] 상하이박물관..
  2. 10월 이병률 시인, 11월 김종대..
  3. 세계 스마트폰 시장 회복세, VIVO..
  4. 상하이의 골목 ‘롱탕(弄堂)’을 아시..
  5. 中 연소득 1900만원 미만, 개인소..
  6. “놓칠 수 없어!” 상하이, 외식·숙..
  7. 상하이, 주택 공적금 대출 정책 조정..
  8. 中 3분기 GDP 4.6% 성장…기대..
  9. 왕젠린, 미국 레전더리엔터 모든 지분..
  10. 상하이 홍차오공항 탑승교 ‘펑’… 원..

경제

  1. 세계 스마트폰 시장 회복세, VIVO..
  2. 상하이, 주택 공적금 대출 정책 조정..
  3. 中 3분기 GDP 4.6% 성장…기대..
  4. 왕젠린, 미국 레전더리엔터 모든 지분..
  5. 中 ‘오공’ 열풍에 3분기 게임시장..
  6. 中 ‘사실상 기준금리’ LPR 0.2..
  7. 中 전기차 침투율 3개월 연속 50%..
  8. CATL, 매출 줄고 순이익 늘었다…..
  9. 중국 스타벅스, ‘윈난’ 원두 사용한..
  10. 1인당 가처분 소득 지역 순위 공개…..

사회

  1. 10월 이병률 시인, 11월 김종대..
  2. 中 연소득 1900만원 미만, 개인소..
  3. “놓칠 수 없어!” 상하이, 외식·숙..
  4. 상하이 홍차오공항 탑승교 ‘펑’… 원..
  5. 미국 유명 디자이너 ‘복장불량’으로..
  6. 中 KFC, 유전자변형 대두유로 튀김..
  7. 재외동포웰컴센터·한인비즈니스센터 10..

문화

  1. [박물관 리터러시 ①] 상하이박물관..
  2. 10월 이병률 시인, 11월 김종대..
  3. [신간안내]알테쉬톡의 공습
  4. 상하이 제4회 ‘광장커피 카니발’ 내..

오피니언

  1. [박물관 리터러시 ①] 상하이박물관..
  2. [허스토리 in 상하이] 2024년..
  3. 주식·부동산 동시 회복, 서민을 위한..
  4. [허스토리 in 상하이] “그래, 한..
  5. [무역협회] 시장 자신감을 소중히 여..
  6. [상하이의 사랑법 18] 사랑에도 절..

프리미엄광고

ad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