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첨단기술 부문에 진출하고 있다. 1천억달러가 넘는 무역흑자, 8천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 등 막대한 자금력이 무기로 합작이나 기술제휴, 기업 인수 같은 합법적인 방식은 물론 불법복제, 산업스파이 같은 비합법 방식까지 동원해 가며 첨단제품에 손을 뻗치고 있다.
일부에선 중국시장을 노리고 진출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과거 중원을 점령했던 만주족이나 몽골족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책적 뒷받침=중국 정부는 지난 7일 앞으로 15년간의 과학기술 진흥방침을 담은 ‘국가 장기 과학기술발전계획 요강’을 발표했다. 연구개발비를 2004년 기준 국내생산(GDP)의 1.23%에서 2.5%로 두배로 늘려, 최종년도인 2020년에는 연간 9천억위안(약 1120억달러)을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현재 50% 수준인 기술 대외의존도를 2020년에는 30% 이하로 낮추고, 중국인의 발명·특허건수 및 과학논문 인용건수를 세계5위 이내로 끌어올려 금세기 중반에 과학기술대국 입국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대규모 집적회로 제조기술과 인공지능, 차세대 무선통신 등 정보통신분야와 고온초전도, 태양전지, 연료전지 등 신소재 및 에너지 분야, 대형항공기, 유인우주선 등 부문을 중요 프로젝트로 선정해 중점 육성할 방침이다. 특히 자동차와 정보산업 등 분야에선 외자를 적극 도입하고 기술력을 흡수하는 방식을 강조했다. 합작기업의 경우 기술이전과 연구소 건설 등을 요구하는 것도 이를 겨냥한 것이다. 메년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대외 투자국별 산업지도 목록> 2004년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한국의 자동차, 화공원료, 통신, 전자 등 투자장려업종으로 꼽아, 한국의 첨단기업들은 중국 기업들의 먹잇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스파이도 불사한다=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짝퉁’의 70%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복제품 수준은 아디다스 운동화나 구찌 시계의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다. 중국은 지난 16일 세계 최첨단 자기부상열차를 100% 중국기술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자기부상열차 기술은 독일의 지멘스와 철강업체인 티센크루프 등으로 구성된 ‘트랜스라피드 컨소시엄’이 중국업체와 개발해 왔다. 중국 당국의 발표는 지난해 12월 중국 기술자들이 트란스라피드의 정비시설에 한밤중에 침입해 열차를 실측하는 모습이 폐쇄회로 화면에 찍힌 뒤 컨소시엄과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나온 것이다.
지멘스와 티센크루프는 통제소프트웨어 등 핵심기술은 넘어가지 않았다고 애써 자위하며 제소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 별도로 수개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두 회사는 이들 사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멘스 경영진의 한 인사는 <슈피겔>과 회견에서 “중국 시장은 삼키기에 아주 쓴 알약”이라며 회사의 어려운 입장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최근 중국은 에어버스 최신형 A320을 150대나 구매하는 대신에 에어버스의 중국 현지공장 건설을 요구해, 에어버스의 구형 소형모델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같은 시점에 중국 정부는 2010년까지 150~200명이 탑승하는 여객기 생산계획을 발표했다. 합작기업을 통해 획득한 기술을 원용해 자체제품을 만들어내는 중국의 통상적인 수법이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기술업체를 사서 통째로 옮긴다=자동차산업은 중국의 차세대 역점사업이다. 중국 최대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리판그룹은 엔진 분야의 첨단기술 획득을 위해, 브라질의 ‘캄포라르고 엔진공장’을 사들여 생산설비를 통째로 중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크라이슬러가 다임러에 합병되기 직전인 1998년 베엠베와 50-50 합작 투자로 건설된 이 공장은 미국과 독일의 최신기술을 종합해 1600㏄ 트리텍엔진을 생산하는 최첨단 엔진공장이다. 다임러는 경쟁사인 베엠베와 합작이 꺼끄러운데다 브라질 자동차시장이 침체되면서 매물로 나온 것이다. 2008년 유럽, 2009년 미국시장에 자동차를 목표로 한 리판그룹으로선 단번에 한국을 뛰어넘어 미국 일본 독일의 수준에 맞먹는 기술력 확보를 노리고 있다. 리판그룹의 엔진공장 인수에는 중국 정부가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강력히 지원하고 있다.